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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해구아래/단편

인사

 

어두운 곳(동굴, 방, 감옥 등 장소는 상관없습니다)에 혼자 있습니다.

다음의 예 중에서 하나의 상황을 선택해 써주세요.

1. 주변을 더듬다가 무언가를 만집니다.

2. 무언가가 점점 다가옵니다.

장문 단문을 한 번씩 번갈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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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네가 나를 떠난 지 한 달 하고도 일곱 번째 날에 벌어진 일.

   

  눈이 떠졌다. 어떤 기척이나 소리도 없었지만 마치 무엇인가에 부름이라도 받은 듯, 나는 그렇게 갑작스레 꿈속에서 걸어 나와야 했다.

  때는 깊은 밤. 평소 잠이 들기 전에 집안의 모든 불을 끄기 때문에 이 작은 방은 짙은 어둠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사위가 고요하다. 밤의 그 넓고 평온한 품에 안겨 만물이 깊은 잠에 빠지기라도 한 듯. 평온한 안식이 그곳에 있었다. 그 모든 것은 나로 하여금 어떤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 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몇 번이나 반복해왔으며 그때마다 몇 번이나 후회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번에도 같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이불 속에서 손을 빼내어 오른쪽 다리 옆을 더듬는다. 손끝이 떨린다. 그곳에 무엇도 존재 하지 않을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숨이 막히는 것 같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손끝에 닿는 것이 있었다. 부드러운 털가죽의 감촉. 그것은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었으며, 작게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익숙한 떨림. 나지막이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귀속을 선명히 파고든다. 눈앞이 흐려졌다.

  그 순간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안도 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나온 인사말에 놀라면서도 나는 다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을 감았다. 그러자 눈 꼬리를 타고 뜨겁고 차가운 액체가 흘러내리더니 천천히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든다.   

 감사합니다.

  내 작은 고양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넬 기회를 돌려줘서.

  감사합니다.

  이것이 비록 순간에 불과한 꿈일 지라도, 눈을 뜨면 부서져 흩어질 파편에 불과할지라도. 

 

  나지막한 속삭임은 계속 되었다. 샛별이 지고 선명한 아침 햇살이 감겨진 눈꺼풀을 부드럽게 두드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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