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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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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잠드는 방법 차다. 차갑다. 겨우 잠들었나 했는데. 갑작스러운 불쾌한 습기에 소녀는 눈을 뜬다. 베갯맡이 축축하다. 처음엔 평소 습관처럼 침을 흘린 걸까 하는 생각이 짤막하게 머릿속을 스쳤으나, 젖은 부위가 지나치게 컸다. 생각이 깊어지는 동안 서서히 의식이 각성상태에 접어든다. 동시에 툭, 툭, 툭 하고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기 어린 울림이 귀에 들어온다. 소리의 근원은 바로 머리 위. 그제야 베게 끄트머리로 무엇인가 방울방울 떨어지는 둔한 진동이 뺨으로 전해졌다. 또 비라도 새는 걸까. 집주인에게 항의해야겠는걸. 귀찮은 마음에 옆으로 누운 상태 그대로 고개는 움직이지도 않고 한쪽 손을 머리 위로 뻗는다. 빠르지 않게 느릿느릿. 곧 소리의 근원에 도달한 손 위로 액체 방울이 떨어졌다. 톡, 톡, 톡. 차지 않았다...
세계 호러 걸작 베스트 : 일곱가지 이야기 에드거 엘런포우, 윌리엄 프라이어 하비, 사키, 리처드 바햄 미들턴, 로드 던세이니, 레녹스 로빈슨, E.M.델라필드의 단편이 실린 책. 제목이 말해주듯 저도 모르게 목덜미가 서늘해 지는 이야기들이 모여있다. 하지만 일곱편의 단편들은 유혈이낭자한다거나 끔찍하다기 보다는 신비하고 기묘하며 혹은 슬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특히, 마지막에 실린 [돌아온 소피 메이슨]은 유령이 아닌 도덕성과 죄책감이 없는 사람의 "사악함"이 주는 오싹함을 아주 잘 표현한 이야기이다. 1930년대에 쓰인 이 소설이라 믿기지 않을정도. 이것이 사이코페스다 라는 것을 잘 표현한 글이었다. 각각의 이야기는 정말 매우 짧기 때문에 책도 상당히 가볍고 얄팍한 편. 하지만 개인 적으로는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가고 생각한다^^ (..
과수원 기담 그래, 기담을 모으고 있다고? 이런 날씨에는 그런 오싹하고 기이한 이야기가 제격이긴 하지.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단 하나 뿐이야. 그다지 유쾌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이야기지. 그래도 들을 텐가? 좋아. 정 듣고 싶다면 내 이야기 해 줄 수밖에. - 때는 9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절이었지. 줄지어선 나무그늘 너머에서는 뜨거운 햇살이 일렁이며 도로를 달구고 있었다네. 거기에 한 소년이 있었어. 소년은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리고 있었지. 지겨웠거든. 부모님과 함께 시골로 주말여행을 가는 중이었어. 고르지 못한 노면 탓에 차는 연신 덜컹거렸지. 소년의 부모님은 그동안 줄곧 로망이었다며 갑작스레 시골의 작은 임대 별장으로의 주말여행을 계획했던거야. 소년의 아버지는 최근 보는 전원 잡지에서 주말이나 휴가..
안녕 ...으앗! 사람이 닥치면 한다는 말도,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도, 역시 진실이었다!! 아무튼,,, 기한내에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ㅂ; ...다 쓰고 읽어보니 닐 게이먼의, 샌드맨의 영향이 느껴진다 ;ㅂ;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 녕 어느 순간부터인가 무엇인가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미친 듯이 그것에 몰두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주 사소한 것 까지 전부 알지 못하면 만족 할 수 없는 듯 나는 그것을 분해해 가장 깊은 곳 까지 파고 들어간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그건 결국 그 대상을 완전히 믿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매순간 "안녕."이라고 말해야 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이젠 알 수 있다. - 그건 언제나 아주 힘든 일었다. 그 대상을 향해 쏟아 부었던 모든 것-그것이 증오, 혹은 ..
그녀의 감기 대처법 제시문 : 감기라는 소제를 사용하여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녀는 평소와 다른 묘하게 들뜬 기분에 어리둥절해했다. 지난밤 밤을 지새워 가며 으르렁 거리던 이웃집 개들 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한 까닭인지 머리는 몽롱하고 무거웠다. 그녀는 이불 속에서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부스스해진 머리카락 사이로 서늘한 공기가 살랑거린다. 낡은 전기장판으로 데워진 이부자리 속과는 달리 방안의 공기는 시렸다. 오한에 몸이 작게 떨렸지만, 그녀는 곧 멍하니 일어서서 늘어진 가디건을 어께에 걸쳤다. 느릿느릿 주방으로 들어가 그릇을 꺼내고 씨리얼과 우유를 부어 말아 먹고는 다시 느릿느릿 그릇을 개수대에 가지고가 헹군다. 그리고 욕실로 들어가 천천히 샤워를 했다. 물기 촉촉한 머리카락으로 욕실을 나설..
반지 제시어 : 잃어버린 반지, 영수증, 계단 저기 저 푸른 숲속에는 도깨비 한 마리가 살고 있대. 그 도깨비는 마주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소원을 들어준대. 하지만, 명심해. 그건 딱 한 번뿐이래. * * * "여기가 맞나, 김군?" 그는 삐딱하게 서서 아파트 비상계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였기 때문에 계단은 여기저기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부스러진 흔적들로 가득했다. "그럼 맞고말고요. 여기가 분명합니다." 소년은 확언했다. "자, 저기 보세요. 저기 저 구석에. 그림자가 흔들리는 게 보이죠?" 과연 소년의 말대로 음습한 기운이 계단 쪽에서 솟아올라 배회하는 것이 보였다. 그는 여유 자작한 태도로 걸어 계단 쪽으로 향한다. 묘하게 웅얼거리면서 어디에서 들리는 건지 방향을 가늠하기 힘든 소리가 ..
나의 사랑스러운 2004년, 판소 카페 묘사 대행진에 내려고 쓰던 글이었는데 3000자를 4000자로 잘못 기억 하는 바람에 적기만 하고 참가는 못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시험 기간인데 공부도 안되고 하고 끄적였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녀석은 상당히 못난 얼굴을 하고 있다. 물론 길고양이치고 샴 같은 우아함을 지닌 녀석을 찾아보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나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녀석들이 눈에 띄기 마련이었다. 허나 녀석은 절대 그런 고고하고 깔끔해 보이는 고양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길고양이 중에서도 정말 못난 축에 속해있었다. 녀석의 머리는 밤톨 같이 둥글 넙적한 느낌으로, 마늘쪽 같은 작은 귀가 말 그대로 붙어 있는 식으로 달려 있었다. 눈은 심술궂은 모양으로 쫙 찢어져 있으며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는 코..
빨리 잠드는 방법 늦은 시간. 사위가 온통 어둠 속에 가라앉은 가운데, 희미한 달빛 속에서 풀벌레들이 노래한다. 이제 8월도 다 끝나가는 시기이건만 오늘따라 견디기 힘든 열기가 밤의 공기 속에 감돌고 있다. 소녀는 더위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불 속에서 한참을 뒤척이고 있었다. 속삭이듯 들리는 풀벌레 소리가 어서 꿈속에 빠져들라 채근하듯 조용조용히 울렸지만 잠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하나, 둘, 셋. 수를 헤아려 볼까. 아니면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우유를 마시는 거야. 머리맡에 양파를 가져다 두는 수도 있지. 몇 가지 잠을 이루기 위한 소소한 민간요법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지난날의 경험에 의하면 큰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웠다. 아니, 그보다는 귀찮음이 더 컸음이라. 그렇게 더위와 싸우며 침대 위에서 뒹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