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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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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가 꽃을 삽니다.살 수 없다면 꺾어서,꺾을 수 없다면 종이로 접어그대에게 건네렵니다. 꽃을 접는건 쉽고,한번 익히면 쉬 잊히지도 않아언제든 필요할때만들 수 있죠. 국화는 책에서,장미는 친구에게,동백꽃 접는 법은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말했다시피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랍니다.거절하지 않으면누구에게라도 전할 수 있어요. 그것이사람에서 사람으로먼길 굽이굽이 돌아다시 내게로 온다면,여한이 없을 겁니다. 거리로 나가종이를 사요.살 수 없다면훔쳐서,훔칠 수 없다면책장을 찢어꽃을 피워 흩뿌릴래요.
11 운율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본관을 벗어나 별관으로 향하는 짤막한 오솔길로 들어섰다. 요철진 바닥엔 떨어진 하얀 꽃잎이 비 온 뒤 물이 그러하듯 고여 있다. 하얗고 보드라운 길 위를 약간은 시린 바람과 매끄러운 꽃잎을 맞으며 나아가는 동안 나루는 조금씩 걸음이 늦춰지곤 했다. "김나루?" 그럴 때마다 운율은 몽롱하게 서 있는 소녀의 이름을 불렀고, 그러면 그녀는 마치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이 정신을 차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별관이라 불리는 그 건물은 이 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복도와 계단은 아직도 나무로 짜여 있었다. 미술실은 발을 디딜 때마다 살짝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 이 층 복도 초입의 왼편에 있었다. 운율이 익숙한 동작으로 문을 밀자, 열어두고 나왔던 창문을 통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