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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해구아래/단편

그 곳





  그곳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러나 흔하지 않으며, 넓지도 좁지도 않고, 인적이 드물지 않으나 사람의 발길이 많지도 않는 작고 오래된 골목 귀퉁이 어딘가에 있었다. 그 나무문은 골목이 생길 때부터 자리하고 있었고, 이제는 마치 골목의 일부인 것처럼 흐릿한 인상을 풍겼다. 그러나 그 곳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에게 있어서 그 문은 특별한 것이었다.

  머리, 혹은 가슴 속, 아니면 마음, 심장이라 불리는 것의 한쪽 구석에서 필요를 느끼면 언제든 방문 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원하는 만큼 머물다 내키는 때 떠날 수 있는 곳.

  갈색의 낡은 나무문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만 큰 수고를 들일 필요도 없이 손끝으로 살짝만 밀어도 부드럽게 열린다. 안으로 들어서면 당신은 부드러운 커피 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빛이 스며드는 창가 앞에는 금빛 먼지들이 춤춘다.

  그 아래 자그마한 화분들이 사이좋게 늘어 서있다. 작지만 예쁜 꽃을 피운 것도 있으며 파릇한 잎을 뽐내는 녀석들도 있다.

  홀에는 작은 테이블들이 늘어서 있다. 색깔도 모양도 모두 제각각 이었지만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만은 닮은꼴이다.

  그는 그 테이블 중 한 곳에 앉아 있었다. 보통 키에 적당한 체구. 편안해 보이는 옷차림. 검은 머리카락 아래에는 단정한 모양새의 하얀 가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석고로 만들어진 가면은 조금 까칠한 질감이었지만 매우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순진무구한 소년 같은 표정. 죄를 범하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할 어린아이와 같은.

  그는 무엇인가를 생각 하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 테이블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이다. 빈 커피 잔이 그 앞에서 차게 식어가고 있다.

  그 옆을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가다 멈춰 섰다.

  여자였다.

  길고 낡은 드레스는 만지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날것처럼 바래있었다. 매우 얇은 천을 겹겹이 둘러 만든 치맛자락은 발끝만 겨우 보일 정도로 길다. 손에는 잔과 쿠키가 올려져있는 트레이가 들려 있었다. 잔에서는 따스해 보이는 김이 모락모락 흘러나왔다. 

  여인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인사 했다.

  “안녕.”

 그는 그녀를 향해 힐끗 시선을 던지며 답했다.

  “안녕.”

  그리고 곧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겨들어 입을 다물었다.

  여인은 그를 잠시 내려다보다 트레이를 테이블에 내려 두고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따뜻한 잔을 들어 올려 호호 불고는 후르륵 소리를 내며 커피를 마셨다.

  향긋한 커피의 향과 여인이 만들어내는 소음에 남자는 생각하기를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면 안쪽 반짝이는 시선과 여인의 부드러운 눈빛이 마주쳤다.

  그가 물었다.

  “너 누구야?”

  여인은 기척 없이 웃으며 답했다.

  “니 반쪽.”

  그는 곧바로 부정했다.

  “거짓말 하지 마.”
  “그래, 아닐 수도 있고.”

  그녀가 순순히 인정하자 그는 오히려 초조해졌는지 시선을 빈 커피 잔 위로 떨구었다. 여인은 그 모습을 조심스레 살피며 잔을 만지작거렸다.

  불편하고 긴 침묵이 이어지고 있는데, 순간 여인의 발치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거의 동시에 두 사람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이성적인 행동이라기보다 그것은 호기심에 이끌린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거기에는 작은 나사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군데군데 붉은 녹 자국이 있고 쇳가루와 희미한 기름칠의 흔적이 남은 오래된 철 조각.

  “아….”

  여인의 입에서 낮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놀람이라기보다는 좀 더 일상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길을 걷다 우연히 운동화 끈이 풀린 것을 발견 했을 때 와 같은.

  그녀는 천천히 몸을 숙여 손가락으로 나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보다 나사를 향해 후 하고 입김을 불었다. 그런 다음 손끝으로 톡톡 치며 먼지를 털어내 고는 품속에 조용히 갈무리 했다.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가 물었다. 그늘진 가면 안쪽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게 뭐야?” 

  여인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 이거. 나사.”
  “나사?”

  남자가 되묻자 그녀는 어린애처럼 웃으며 다시 답했다.

  “응, 나사.”
  “어디서 나온 건데?”

  그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그것은 일종의 잔혹성 까지 띄고 있었다-여인은 말없이 손가락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성마른 손가락은 그녀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그는 순간 놀란 듯 눈을 크게 떴으나 이내 웃는 기척이 느껴졌다. 어딘지 우월감에 젖은, 그러나 억눌린 웃음소리가 작게 울린다.

  “뭐야, 낡았잖아. 그러다 언젠가 멈춰버리는 거 아니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독기 어린 말이 조소에 섞여 흘러 나왔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가시가 그녀를 상처 입히기 위해 고의 적으로 흩뿌려진다.

  그러나 그녀는 상처받은 기색도 없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언젠간 멈출 거야.”

  여인의 반응이 뭔가 불만족스러웠는지, 혹은 생각 하던 것과 달랐기 때문인지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그런 표정을 보이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던 여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왜 그래?”

  그는 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를 따라서 여인 역시 고개를 돌려 보았으나 거기에서 무엇을 발견 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결국 그를 행해 다시 물어야 했다.

  “뭐가 잘못 됐어?”

  열심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여자는 그의 가면 안쪽의 표정을 살피려 노력했다. 그러나 눈 이외의 부분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여인이 계속 자신을 바라보자 그는 성가시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리고 가벼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너, 이 소리 들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소리? 무슨 소리?”
  “이 소리 말이야.” 

  하지만 그녀의 귀에는 여전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르겠는데? 무슨 소리가 들린 다는 거야?”

  그는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소리가 안 들린단 말이야? 잘 들어봐. 이 소리는 착한 사람의 귀에만 들리는 거니까.”

  그러나 여인은 여전히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녀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 바라보며 그는 나지막이 키득 거렸다.

  여인은 부루퉁한 표정으로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마치 커다란 비밀을 털어놓는 것처럼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나 나쁜 사람이야.”

  남자는 웃음을 멈추려는 듯 한쪽 손으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으나 그의 어깨는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가 어렵게 한 자신의 선언을 조금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그녀는 조금 엄격한 표정을 지었다.

  “너, 내말 안 믿는 구나?”

  그제야 그는 웃음기를 거두고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왜 니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데?”

  호기심에 반짝거리는 남자의 눈을 바라보며 여인은 천천히 말했다.

  “내 머릿속에서 얼마나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면 넌 분명히 놀랄걸?”
  “머릿속?”
  “그래 머릿속.”
  “진짜로 하는 건 아니고 생각으로만?”

  그녀가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는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웃지 마, 난 진지 하단 말이야!”  

  그녀는 정말 화가 난 듯 했고, 그제야 자신의 태도를 조금 반성한 것인지 남자는 성실하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실제로 행동 한건 아니고 그냥 머릿속에서 생각만 한 거라면서?”
  “응, 그래.”
  “그런데 왜 니가 나쁜 사람인데? 그냥 생각만 한 건데.”

  그가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기 때문에 그녀는 차근차근 설명 해 주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그녀에게 있어서 이런 상황은 자주 겼어왔던 것이기 때문에 조금 번거로울 뿐이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건,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야.”
  “안전?”

  그가 멍하니 되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안전. 난 끔찍한 상상을 머릿속에서 하고, 실제로도 할 수 있어.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날 싫어할 걸 알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뿐이야.”

  여인은 눈가에 웃음을 머금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도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어?”  

  그녀의 표정은 조금 의기양양해 보이기까지 했다.

  남자는 할 말을 잊었는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무슨 의미야?”

  그녀가 조금 토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그는 내뱉듯이 빠른 어조로 말하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 말이야.”

  강한 명령조의 목소리.

  “아까 왜 내 반쪽이라고 말 한 거야?”

  대답은 짧고 단순하게 돌아왔다.

  “그냥.”
  “그냥?”

  기가 차다는 듯 그가 되묻자 여인은 작게 변명을 늘어놓듯 중얼 거렸다.

  “그럴 지도 모른다고…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 한 것뿐이야.”

  남자는 가면 안쪽에서 긴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단지 그것뿐이야?”
  “응.”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불편한 침묵이 한동안 이어졌다.

  “미안.”

  작게,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이마를 짚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여인이 다시 한 번 말했다.

  “미안, 정말 미안해.”

  그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여인은 고개를 숙이곤 조용히 자신의 잔에 손을 뻗어 커피를 홀짝였다. 커피는 거의 다 식어 미지근해 져 있었다. 

  “가면 말이야.”

  그녀는 잔을 내려다보며 느린 어조로 말했다.

  “아름답다고 생각했어.”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 흔들림을 느낀 것인지 그는 고개를 들고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의 내깔린 눈동자 위로 그의 시선이 머물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손에 들린 잔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 가면을 만든 것도 너니까, 네가 마음에 든다고 생각 했어.”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자 그녀의 눈가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촉촉한 물기 어린 목소리는 수줍은 듯 점점 작아졌지만, 마지막 한 단어 까지 분명히 말했다.

  “니가 아름답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말을 건거야.”

  그는 말없이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숨소리마저 감추려는 듯 미동도 없이. 하지만 숨길 수 없는 정염이 그 속에서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 눈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여인은 살짝 시선을 피했다. 뺨이 붉어졌다. 당혹감을 숨기기 위해 잔을 들어올려 커피를 홀짝였다. 이제는 다 식어버려서 맛도 향도 흐릿해 졌지만 그녀는 그런 것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입술에서 잔을 땐 그녀는 그것을 테이블 위에 내려두었다. 그리고 이제는 쿠키를 들어 올려 야금야금 베어 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가 툭 던지듯 물었다.

  “맛있어?”

  그녀는 과자를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쿠키 하나는 금세 그녀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그녀는 두 번째 것에 손을 뻗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있다 입을 열었다.

  “너 말이야.”

  그녀는 과자를 입에 넣으려다 말고 대답했다.

  “응? 너도 이거 먹을래?”

  여인이 과자를 내밀자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말을 이었다. 

  “왜 화를 안낸 거야?”

  그녀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그는 내뱉듯이 설명을 늘어놓았다.

  “아까 내가 너한테 멈춰버릴 거라고 말했잖아.”

  그제야 여인은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듣고는 나지막이 탄식했다. 

  “아아, 아까 그 말?”
  “그래, 그 말.”

  답하는 그의 표정은 조금 지쳐보였다. 허나 그녀는 조금도 그런 것은 눈치 채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넌 사실을 말한 거잖아. 그런데 왜 화를 내야해?”
  “그런 말 하면 기분 나빠 하는 게 보통이잖아.”
  “그래?”

  그가 힘주어 답했다.

  “그래.”

  하지만 여인은 여전히 어린애처럼 눈을 깜빡이며 답할 뿐이었다.

  “고개를 돌리고 피한다고 안 멈추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생긋 웃으며 남자에게 다시 쿠키를 권했다. 그는 이번에는 군말 없이 그것을 받아 들고는 조용히 바라보았다. 갈색의 잘 구워진 쿠키에서는 아몬드 향이 났다.

  잠시 동안 생각에 빠져있던 남자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하지만 무섭잖아, 멈춘다는 건.”

  여인은 남자의 손끝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왜 무섭다고 생각 하는데.”

  그는 손가락으로 과자의 귀퉁이를 잡고 으스러트렸다.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보기 좋은 손가락 사이로 갈색의 가루가 흘러내려 테이블 위를 뒹군다.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머리카락 사이로 어둡게 그늘져 있었다. 

  “그건 모든 게 끝나버린 다는 말이니까.”

  그 목소리에서는 어떠한 징조 같은 것도 느낄 수 없었지만 여인은 그 속에 풍기는 두려움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또한 슬픔과 무엇인가를 향한 그리움이 그 안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 역시.   
   
  여인은 조용히 손을 뻗어 그의 손등 위에 올렸다. 그리고 말없이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마치 울다가 지친 아이를 위로 하 듯 상냥하게.

  가면 안쪽에서 사납게 흔들리고 있던 눈빛이 천천히 고요해 졌다. 습기 어린 반짝임이 잠시 비쳤다가 조용히 감기는 눈꺼풀 아래로 숨어든다. 

  얼마인가 시간이 흐른 뒤 비로서 그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

  조금 가라 앉아 쉰 듯이 낮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누군가와 약속을 했었어.”

  여인은 살짝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용히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 그곳에서 기다리기로.”

  거기 까지 말한 다음 그는 가늘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깊이 공기를 들이 마신 다음 말을 이었다.

  “그래서 다음 생에는 쌍둥이로 태어나자고. 그렇게 약속 했었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여인이 입을 열었다.

  “그거 부러운 이야기네.”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너도 끼워줄까?”

  여인은 가타부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수줍게 미소 짓는 그 표정은 거절의 의사 따위는 조금도 비치지 않고 있었다.

  “잠시만.”

  그는 여인의 손 밑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고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거칠지만 단정한 손이 멀어져 가자 그녀는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어디 가려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슬쩍 미소 지었다.

  “응, 커피 리필 하려고.”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자신의 잔을 집어 들었다.

  “아, 그래 다녀와.”

  베시시 웃는 여자의 얼굴을 남자는 잠시 바라보다 몸을 돌려 멀어져 갔다. 여인은 그의 기척이 자신의 등 뒤로 멀어져 가는 것을 느끼며 다시 쿠키를 베어 물었다. 와삭.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자신의 접시에 있던 쿠키를 다 먹었고, 커피 잔 역시 바닥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여인은 조용히 일어나 트레이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카운 터를 향해 걸었다. 거기에는 누군가가 사용 했던 것이 분명한, 그러나 이미 식어버린 커피 잔과 아름다운 하얀색 가면이 놓여 있었다.

  여인은 트레이를 내려 두고는 조심스럽게 가면을 들어 올렸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소년이 미소 짓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품안에 끓어 안고 잠시 동안 숨죽여 울었다. 그리고 눈물이 말랐을 무렵, 그녀는 여전히 그것을 소중히 품에 않고 카페의 문 앞에 섰다.

  가녀린 손이 부드럽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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