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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해구아래/蝕:eclip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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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득.

  꾀꼬리는 아슬아슬한 순간 날아올라 날카로운 손아귀에서 하늘로 도망쳤다. 그러나 완전히 피하지는 못해 깃 몇 개가 뜯겨져 흩날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깊고 푸른빛 사이로 연분홍 꽃잎과 선명한 노랑 빛 깃털이 흔들거리며 떨어져 내린다.

  노획물 대신 허공을 휘저은 나비는 매끄럽게 몸을 비틀어 땅위로 내려섰다. 그리고 무심 한 듯, 새가 날아간 하늘은 돌아도 안보고 머리카락과 구겨진 치맛자락을 정리한다. 하지만 몸짓에 담긴 신경질 적인 기운마저 지우지는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던 운율은 무심결에 하루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소녀는 여전히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흰 뺨을 부드럽게 이완되어 편안해 보이는 표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소녀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연필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비어 있던 하얀 도화지 위에 선들이 그어진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날개 달린 소년, 그리고 그 아래 매달리듯 손을 뻗는 우아한 여인의 윤곽이 조금씩 들어난다.

  이제 운율은 확신 할 수 있었다. 역시 저 소녀는 주변에 영향을 끼치기만 할뿐이 아니라 그것들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아주 선명하게.

  그때 종이 울렸다. 운율은 안경을 집어 들었다. 다시 렌즈 너머로 모든 것이 고요히 가라앉자 그는 천천히 일어나 교탁 앞으로 다가갔다.

  “자 쉬는 시간이다. 수업은 10분 후에 다시 시작하자.”

  말을 마친 운율이 몸을 돌리기 무섭게 아이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전학생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이제 앞으로 10분간, 교실은 교사들의 지배 영역이 아닌 아이들의 것이다.

  운율은 웅성거림을 뒤로 하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의 발걸음은 이사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글쟁이들의 글 이야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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