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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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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삼덩굴 너에게 이름은 있으나 많은 이가 그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혹여나 그를 입에담는다 해도 그것은 저주에 가까울 것이다. 지난날의 모지게 내린 비에도 녹지 않고 너는 피어났다. 대지를 가르는 열기 속에서도 너는 피었다. 낫질을 하고 독을 풀고 혹은 짓밟아도 내뻗는 손발을 날카롭게 할퀴며 너는 핀다. 하늘에 대한 동경이 너를 살게 했다. 뿌리라는 이름의 발톱으로 필사적으로 매달려 높이 조금더 높이. 기어오른다 해도 반길이 없건만 거친 나무껍질을 물어뜯으며 닿지 못할 하늘로 또 한걸음. 그런 너일지라도 나염천 고운 천자락을 물들이고 향긋한 나물이되어 상위에 오르며 열에 들뜬 입술을 식혀줄수 있다고, 그러니 천하다 이르지 말라며 누군가는 말한다. 하지만 네가 남긴 상처는 달포가 지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심장은 ..
사진을 뒤적이다 사진을 뒤적이다 널 발견 했어. 평소보다 더 날씬하고 더 도도해 보이는 얼굴로 넌 이쪽을 돌아 보고 있었지. 그날 나는 조금 아파서 네 밥 그릇에 사료를 부어주고 목덜미를 조금 쓰다듬어 준 다음 찬 바람을 피해 도망치다 시피 다시 방으로 들어왔지. 그래, 사실 그때 알고 있었을 지도 몰라. 그게 널 볼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이란걸. 다시 밖에 나갔을 땐 이미 넌 보이지 않았지. 목이 아파 부르지 못한다는건 핑계에 불과해. 그걸 핑계로 널 포기 한거야. 난 지쳤고 무력했어. 물론 무력하긴 지금도 마찬가지야. 오늘 네 이름을 불러 봤어. 어두운 현관 앞에 서서 망설이듯 가라 앉은 목소리로. 그저 날이 춥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네가 어딘가를 거닐고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일거야.
나, 그리고 한두 마리 그늘진 서쪽 벽 모퉁이에 있던 갈색의 자루 속에는 뻣뻣하게 굳은 죽음이 숨겨져 있었다. 아침, 상아빛 털을 붉게 물들이고 힘겹게 서있던 너를 나는 외면 해버렸다. 울고 있는 동생을 달래는 동안 핏덩이에서 한마리가 눈을 떴고 그것이 죄의 대라가 믿었다. 아픔을 피해 웅크리고 있는 사이 그것은 어둠 속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고 깊이 잠들어 시선조차 마주 할 수 없었다. 그저 네가 거기 있음만을 알 뿐이다. 언젠가 여름 용서하고자 마음 먹었던 그가 죄를 범했을 때 비로서 다시 한마리가 눈을 떴다. 돌보지 않아 내팽겨쳐진 그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 쑥쑥 자라 무엇인지도 몇마리인지도 알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 미래가 없던 아이를 바라볼때 니가 말을 걸어 왔다. 이것은 너의 몫이야. 피하지마. 그래서 나는 너를 그리..
기원 내키는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랴다 보면 그 곳에는 언제나 별이 빛나고 있었다. 물가에서 천천히 기어오르는 안개 속을 해치며 걷던 좁고 긴 길 옆엔, 초록빛 벼이삭들이 흔들 거렸다. 때때로 으슥한 풀숲에서 길고 가느다란 뱀이 느리고 빠른 속도로 기어나와 내 앞을 스쳐지나가면, 난 한동안 멈춰서 그 뒤를 눈으로 쫓곤 했다. 누가 씨를 뿌리지도 않았는데도 홀로 무럭무럭 자란 능수 버들은 칡넝쿨에 휘감겨 휘청인다. 바람이 불면 버드나무 잎의 흔들림에 따라 칡 꽃 향기가 퍼저나갔다. 진하고 화려하며 원색 적인 향이다. 그 나뭇 가지에는 갈색의 요란한 볏을 가진 후투티가 날아들곤 했다. 그새를 보면 별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 행운의 가져다주는 새라 생각 했다. 어느해인가 아주 오래전 여름, 장마철에 비가 사흘 밤..
여자 아이 어제 있었던 일이다. 그 작은 아이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말없이 오도카니 앉아 좀처럼 그림을 그리려 하지 않았다. 동그랗게 자른 바가지 머리 아래로 입술이 뾰루퉁하니 부풀어 있었다. "왜 그러니?" 라고 묻자 "하기 싫어."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아이가 말했다. "왜 하기 싫을까?" "하기 싫어." "자 그럼 이름이랑 학년, 반, 번호라도 쓰세요." "싫어, 싫어." "그러지 말고 우리 쓰자, 응?" 그러자 녀석은 불만족 스러운 표정으로 "하지만 보라색이 없는걸." 이란다. "자, 여기." 조금 떨어진 자리에 굴러다니는 보라색 싸인펜을 주워주자 아이는 그제야 머뭇 거리며 조롱박위에 또박또박 글씨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을 살피고 돌아와보자 녀석은 글자며 이름을 한자 한자 다른 ..
이름을 지어 달래요 대학부터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있습니다. 한살 터울에 같은 학번이라 그냥 친구 같은 사이죠. 졸업후, 둘다 취업하고 사는 지방도 달라서 거의 연락을 하지도, 만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제가 일을 그만두고 한가해 지면서 홀해 초, 수원에서 만나게 되었어요. 배가 불러 있더라고요. 못난 남자 잘못 만나서 속도 위반으로 결혼 했던거죠. 식도 올리지 못하고, 그냥 혼인 신고만 하고. 혼자서 얼마나 속을 썩였을까요. 배속의 아이는 딸이라고 합니다. 언니가 자기 출산할때 꼭 와달라고, 니가 안오면 애기가 안나오려고 할거라고 하면서 아기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네요. 혹시 성명학이나 그런거 잘 아는분 안계세요? 아주아주 예쁘고 좋은 이름 지어주고싶어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질수 있는 그런 이름으로요.
나는 이름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이름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름이 없기에 누구도 나를 불러 주지 않습니다. 나는 이름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내가 누구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그네들에겐 이름이 있습니다. 나는 그 이름을 소리내어 불러 보지만 나에겐 이름이 없기에 메아리 조차 되돌아 오지 않습니다. 나는 이름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름을 갖고 싶습니다. 나는 이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름을 갖고 싶습니다. 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