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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궤적/리뷰

[한국문화관광지 탐방 -광화문] 생에 첫 경복궁 나들이.




경복궁으로 이동하던 중 마주쳤던 동십자각.
본디 동남쪽 모서리에 서있는 각루(角樓)였지만
궁성이 허물어 지면서 지금처럼 길 한가운데 남아있게 되었다고.
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어야할 서십자각은
일제강점기에 헐려버려 지금 남은 것은 이것 뿐이라고 한다.
다른 유적들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쓸쓸해 보이기도 했지만
오가는 차들을 열심히 감시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성곽 위쪽의 문은 멀리서 봤을때 무척 작아 보여서
요즘은 정말 옛날 사람들 보다 체구가 좋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십자각 성벽 아래쪽의 돌은 잘보면 색이 틀린데,
아귀가 맞지 않는 퍼즐 조각을 억지로 꼽아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서양의 유적들은 벽돌 하나 라고 해도
비슽한 연도로 보이게 만든다음 바꿔넣는다고 알고 있어서 더 그런듯.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광화문.




한국에 살고있고, 인사동 쪽에도 종종 올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광화문과 경복궁 둘다 처음 보기 때문에 조금 흥분되었다.



외국인 광객이 수문장 옆에 서서 포즈를 취하는중.
수문장이 무표정하게 가만히 있는 것이 어쩐지 해학적이었다.



해치.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神獸)로 여겨지는 이 신수가
경복궁 앞에 자리 잡게 된데는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풍수지리설에 비추어 볼 때, 서울은 나라의 수도로 더없이 좋은 곳이기는 하지만,
불의 기운이 지나치게 과하다고 일컬어 졌다.
실제로도 조선 초 궁을 건축 하는 당시부터 화재가 자주 일어났고,
(목조 건축이기도 하고 낙뢰 등으로 인해서) 
결국 불의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궁 앞에 두 개의 해치 석상을 세웠다고 한다.
해치상은 예전엔 광화문 앞 길 건너의 광장에 있었지만
지금은 광화문 바로 앞으로 옮겨져 있다.
한양을 수호하는 신수 답게 늠름한 모습이 파란 하늘과 잘 어울렸다^^


아래사진은 광화문을 밑에서 올려다본것.
붉은 색과 녹색이 어울어져 무척 화려하면서도
묘하게 단정하고 소박한 느낌이 살아 있다.



광화문에는 세개의 출입구가 있는데,
그곳엔 각각 기린麒麟과 봉황鳳凰, 현무玄武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가운데 문에 그려진것이 바로 봉황.




현무가 그려진 문은 광화문 밖에서 봤을때 왼쪽에 있다.




마침 시간을 잘 맞춰서 수문장 교대식을 볼 수 있었다.
수문장들이 들고 있는 깃발에도 사방신이 그려져 있었다.
저 각각의 색에도 뭔가 의미가 있을텐데
거기까진 알아볼 수 없었다.




멋지게 펄럭이는 청룡의 기!



방패의 도깨비는 쌍뿔 도깨비.
전통적으로 우리 나라의 도깨비는 모두 뿔을 두개 가지고 있으며
외뿔 도깨비는 일본의 전설에 나오는 것이라고.




수문장 교대식을 다 본 다음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했다. 



구매 날자와 가격이 쓰여 있었는데
당일 1회 유효라고 쓰인 글자가 어쩐지 눈에 확 들어왔다 ㅋㅋ



저 앞에 보이는 것이 흥례문.
광화문 영역 까지는 무료로 관람 할수 있지만
흥례문 안쪽에 들어가기 위해선 위의 티켓이 필요하다.
광화문에서 나와 오른쪽 바로 옆에 관광 안내소가 있으니
그곳에서 팜플랫을 얻으면 관람하는데 좀더 도움이 될것이다.
우리는 사진 찍는데 열중해 미처 발견하지 못해서 나갈때 집어들었다



날아 오를 듯 산뜻하게 들어 올려진 기와.



기와 위에 올려진 잡상들은 화마나 잡귀등 액을 쫓기 위해 설치 되었지만,
장식적인 기능도 한다.
그 뒤에 있는 용의 머리는 토수吐首라고 하며
네귀의 추녀 끝에 끼우는 기와의 일종이다.



아래 동상은 천록天鹿이라는 상상의 동물로
금천이 흐르는 어구를 지키는 석상이다.
지금은 겨울이라 어구에 물이 하나도 없었지만
물이 흐르는 계절에 간다면 좀더 흥취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아래 사진처럼 계단이 있는 곳에는(사진의 장소는 근정문)
중간 중간 조각이 된 부분이 보이는데
이곳은 답도踏道라 불리며 임금이 가마를 타고 오르는 길이라고 한다.



근정문 안쪽엔 이처럼 아주 낡고 무거워 보이는 철로된 자물쇠가 있었다.
이렇게 크면 잠그고 여는 것도 일일 듯.




근정문 한쪽 편에는 이처럼 올라 갈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옛날엔 진짜로 병사들이 이런 계단 위에 올라가
왕성을 지키고 있었다고 생각하니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래에서 올려다문 긍정문.
잘 보면 왼쪽의 처마에 뭔가 장치가 되어있는 것이 보인다.


이런 것은 군데군데 처마 밑에 숨어 있는데
아마 열 감지기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긍정전.
 그리고 줄지어 늘어선 비석이 품계석이다.
바닥에 깔린 돌들은 모두 반질반질 하지 않고 울퉁불퉁한 편이었는데
이것은 빛이 반사 되어 눈을 해치거나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긍전전 난간에는 아래 사진 같은 동물 상들이 자리 잡고 있다.



잘 살펴보면 그 동물들이 12지에 등장하는 동물이란 것을 알수있다.



재미 있는 것은 이들 12지신 중 개와 돼지 용이 빠져있다는 것.
개와 돼지는 집에서 키우는 동물이기 때문에 제하였다고 하고
용은 아마 중국의 천제를 상징하기 때문에 제한듯.



아래는 근정전의 내부.



안쪽에 방석이나 등 등이 있어 어떻게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지 상상할 여지를 준다.



정전 천장에는 재미 있게도 칠조룡七爪龍이 자리 잡고 있었다.
존선왕조는 제후국을 자처했으므로 용 발톱이 5개가 되어야 하지만
(오직 중국인 천자국만 7개의 발톱을 가진 용을 사용할 수 있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재건시 왕권강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천자를 상징하는 7개 발톱을 제작하게 하였다는 이야기.

 

저 멀리 보이는 푸른 기와의 으리으리한 건물은 박물관.



정전에서 왼쪽으로 나가면 발견 할 수 있는 카페.
시간이 넉넉 했다거나 혼자 왔다면 들어가서 이것 저것 시켜 봤을지도 모르지만
아닐은 아쉽게도 동행이 있어서 눈 도장만 콕! 찍어뒀다.



아래 사진은 경회루.
화제로 소실 되었으나 고종 4년(1867)에 제건되어 지금까지 건제하다고 한다.
그 이전엔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 이용 되었다고.



봄이나 가을 하다 못해 여름이었으면 좀더 좋았을텐데...
겨울의 경회루는 쓸쓸하고 휑 해보였다.



경희루 옆의 좁은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왼쪽의 궁으로 통하는 문이 보인다.
화려하지 않고 단정한 흰색과 검은 색이 조화를 이룬다.



강화 문이나 다른 곳의 화려한 적녹의 향현과는 사뭇 다른 느낌.



지나가다 처마 밑의 연꼰 무늬가 에뻐서 찰칵~



아래 사진의 정자는 향원정, 연못은 향원지, 다리는 취향교라 불린다.



향원정은 고종이 건청 궁을 지을때 함께 지은 정자로
 원래는 취향교가 북쪽에 있어 건청궁 쪽에서 건널 수 있었다.
다리가 남쪽으로 바뀐것은 1953년이다.
 


이전의 취향교는 우아한 아치형이었던것에 비하여
지금의 다리는 상당히 심심한 외형이 아닌가 싶다.
도대체, 왜! 누가! 그 예쁜 다리를 이렇게 만든건지...!



취향지 한쪽엔 아래와 같은 머릿돌이 있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 볼수 없지만 최초의 발전소가 잇던 곳이라니, 의미심장하다.

아래 사진을 보면 위쪽은 얼음이 꽁꽁 얼어 있는데
아래 쪽은 얼음이 다 녹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알고 보니 바로 이곳에서 물이 흘러 나오는 샘이 있었던것.



열상지원 샘이라는 이름의 이 샘물의 물은 향원정을 지나
경회루 연못을 거처 경복궁 밖까지 흘러간다고 한다.



건청궁은 왕과 왕비가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면서 거처할 목적으로 지어졌던 궁었으나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조선말의기 혼의 한 복판에 위치하게 된다.
1895년 일본인들이 궁궐을 습격해서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은 이곳의 옥호루였다.



건청궁의 서까레는 다른 궁과 달리 단청을 하지 않아
자연 스러운 나무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 하고 있었다. 
왕성이라기보단 어딘가 양반이나 세도가의 집같은 느낌이들었다.



아래 사진의 오른쪽 하단을 잘 보면 소화전이 숨어 있다.



건청궁의 문은 대부분 굳게 닫혀 잇었는데
군데 군데 환기를 위해서인지 창호지가 제거된 부분이 있었다.
그 틈바구니로 살짝 안을 훔쳐 봤다.



가벼운 가제도구나 장식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안을 들여다 보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상궁이 걸어갈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래는 관문각지.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고발 기록을 남긴 자리여서 그런지
터만 남아 있을 뿐인데도 쉽게 걸음을 때기 힘들었다.



아래는 건청궁의 장안당 추수 부용루라고 한다.



무거울것이 분명한 기와의 무게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저 날렵함이란...
동행한 그라미님도 저 곡선에 매료 되어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궁 안에는 저렇게 올려진 들문을 많이 볼 수있다.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면 모두 굳게 닫혀 있었겠지만
관광객들을 의식해서인지 들문은 거의 올려딘체였다.


그 다음 둘러 본 곳은 집옥재와 팔우당, 그리고 협길당.
이곳은 흥미롭게도 중국 양식을 받아 들여 건축되었다고 한다.



과연, 지금까지 지나온 건물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이 누각이 바로 팔우당인데, 재미 있게 종이가 아닌 유리로 창이 끼워져 있다.



처마 위의 용이 기와가 아니라 청동으로 된듯.
예쁜 푸른색의 녹이 슬어 있다.



현판의 글씨 역시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의 글씨라고.



또 단층으로 보이는 복도 안쪽은 이렇게 2층으로 되어있다는 것도 특이한점이란다.



잠깐 숨좀 돌릴겸, 그라미 남과 함께 그린컵에 우려뒀던
레드 파파야 블랙티를 마셨다.
싸늘한 날씨 때문에 차는 식어 있었지만
달콤한 향이 가득한 홍차는 기운을 북돋아 줬다.



그 다음 구경한 곳은 신무문.
저 문 밖은 청와대가 위치해있다.



북쪽에 위치한 신무문은 사방신 중 북을 상징하는 현무가 그려져 있었다. 



이쪽에도 매표소를 이용하는 사람이 제법 많은지
경봅궁에 대한 설명이 쓰인 게시판을 볼 수있었다.







지나가다 어쩐지 눈에 들어온 복도.
아래 쪽을 찍어봤다.



무시무시 하게도 마루 아래쪽을 지지하는 나무중 하나가 거의 부숴져 있었다ㄱ-;;;
실수라도 저 마루 위는 걸어가지 않는게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의 독특한 꽃 문양이 있는 담이 대비전인 자경전의 꽃담이다.
흥성 대원군이 경복궁을 증축하면서 고종의 양어머니인 신정황후를 위해 지은 건물이다.
완축후 머지 않아 소실 되었으나 고종 25년에 다시 재건축했다고 한다.
어여쁜 꽃들이 신정 황후를 향한 흥성대원군의 마음을 말해주는 듯 하다.



아래 사진은 연휘 문에서 서서 바라본 아미산의 모습.
탐처럼 보이기도 하는 굴뚝들은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의
온돌방 밑을 통과한 연기가 나가는 굴뚝이다.


가끔가다 복도 밑에 휠체어가 지나가도록 표시판을 붙여놓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저곳을 통해서라면 계단을 지나지 않고도 왕래가 가능한듯.



교태전의 기와 위에도 액맞이 장식들이 줄지어 어있었다.



옛날이 이 길들을 장희빈이나 인현 황후 같은 인물들이 걸었다고 생각하니
골목 하나 하나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역시 왕비의 처소여서 그런지 교태전의 천장 무늬는 화려하기 그지 없다.
그러면서도 연분홍 빛이 많이 들어가 여성스러운 느낌이 풍겼다.



이날 따라 바람이 강해 하늘의 구름은 아주 멋져 보였다.



덕분에 정신을 차리면 건물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자꾸 기와와 하늘, 구름만 찍고 있는 자신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이 다음에 들린 곳은 자선당.
세자와 세자 빈이 묵던 곳이다.

아래는 세자의 방 사진.



밑의 둘은 세자 빈의 거처다.



거울을 보듯 마주본 모양의 방이 인상깊었다.
음양에 따라 세자는 오른쪽 세자빈은 왼쪽에 위치하는 듯.



그럭저럭 다 돌아 봤을 땐 경복군 폐문 시각이 머지 않은 시각이였다.
날씨가 많이 쌀쌀하진 않았지만 강한 바람때문에 좀 힘들었지만
난생 처음의 경복궁 나들이는 즐겁고 유익한 이벤트였다.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을 땐 좀더 따뜻하고 신록이 무성한 때였으면 한다.
그러면 아름다운 우리의 궁을 좀더 잘 즐 길 수 있을테니까!



이 다음은 세종로의 세종대왕과 충무공 박물관이다!
기대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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