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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궤적/다이어리

여자 아이


어제 있었던 일이다.

그  작은 아이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말없이 오도카니 앉아
좀처럼 그림을 그리려 하지 않았다.
동그랗게 자른 바가지 머리 아래로
입술이 뾰루퉁하니 부풀어 있었다.

"왜 그러니?"

라고 묻자
 
"하기 싫어."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아이가 말했다.

"왜 하기 싫을까?"

"하기 싫어."

"자 그럼 이름이랑 학년, 반, 번호라도 쓰세요."

"싫어, 싫어."

"그러지 말고 우리 쓰자, 응?"

그러자 녀석은 불만족 스러운 표정으로

"하지만 보라색이 없는걸."

이란다.

"자, 여기."

조금 떨어진 자리에 굴러다니는 보라색 싸인펜을 주워주자
아이는 그제야 머뭇 거리며 조롱박위에 또박또박
글씨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을 살피고 돌아와보자
녀석은 글자며 이름을 한자 한자 다른 색으로 적다가
그대로 멈춰서 있었다.

"왜 그러니?"

아이는 조롱박을 내려보다가 조그맣게 말했다.

"주황색이 없어."

"여기 있는데?"

내가 손가락으로 기리키자

"아니, 그것 보다 밝은색."

이라고 불만족 스러운 듯이 말했다.
대신 분홍색을 집어주자
아이는 마지못해 대충 글을 마저 써넣었다.

하지만 그 글자는 지금 까지와는 달리 매우 대충적어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삐뚤 빼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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