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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해구아래/그밖에

로체스터씨의 자살극


 세상은 우울하다. 빛도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도 명랑한 새소리도 다 자른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를 위해 남겨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이제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하기로 했다. 필요한 것은 이탈리아산 시가 하나와 위스키 한 병. 나는 시가에 불을 붙여 바닥에 흐트러트린 종이 뭉치 위로 던졌다. 아마 이 과정은 고통스럽고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스키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 나는 알콜에 취해 침대 위로 무너져 내렸다. 곧 독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의식은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지만 다가오는 열기는 희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연기 때문에 목이 따끔거린다.

그때, 내 방문이 벌컥 열리며 그 여자가 들어왔다.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그녀는 거칠게 내 몸을 흔들며 고함쳤다. 이 여자야, 날 죽게 내버려둬! 하고 중얼거렸지만 내가 듣기에도 알콜 때문에 발음은 형편없었다. 그녀는 몇 차례 나를 더 흔들다 다급하게 달려가 버렸다. 그래, 가라고. 날 내버려 둬.

 하지만, 잠시 후 그녀는 돌아왔고,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함께하고 있었다.


  무엇인가 삐걱하는 소리가 났다. 반쯤 열린 문소리였다. 그것은 로체스터 씨의 침실 문으로 연기는 거기서 뭉게뭉게 나오는 것이었다. 이제 페어팩스 부인 생각은 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나는 침실로 들어섰다. 불꽃의 혓바닥이 침대 언저리에서 날름거리고 있었고 이미 커튼에는 불이 붙어 있었다. 불꽃과 연기 한복판에 로체스터 씨는 깊은 잠이 든 채 꼼짝도 않고 누워 있는 것이었다.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나는 고함치면서 그의 몸을 흔들었다. 그는 그저 중얼거리며 돌아누울 뿐이었다. 연기가 그의 지각을 마비시켜버린 것이었다. 일각의 여유도 없었다. 불은 이불에까지 붙어 있었다. 나는 대야와 물동이 쪽으로 달려갔다.

   - 샬럿 브론테, '제인에어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1-272쪽에서 발췌 - 


  제인에어의 일부분입니다. 실제 소설의 내용은 신경쓰지 마시고, 불을 붙인 사람이 이 장면을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가정하여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상황을 보아 주세요^^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글쟁이들의 글 이야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