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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해구아래/물고기의 노래






들리나요, 문을 걸어 잠군 동굴의 문턱을 두드리는 바람의 노래.
따사로운 손길로 차가운 얼음의 벽을 어루만지고 있어요.
알 수 있나요, 오직 바람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기를 울리는 온기에 귀를 기울여 봐요.

그것이 말라비틀어진 진흙구덩이에 지나지 않았을 지라도
부드러운 바람이 그 옆을 스쳐 지나가며 갈색 풀더미들을 바스락 거리게 만들고,
톡, 토독 작은 도토리들 서넛, 장난 스레 샘 주변으로 몸을 굴리고
한 마리 붉은 물고기, 메마른 땅 위에 그 춤을 바치죠.

그것이 범해서는 안 될 터부라 여겨져 왔을 지라도
파르르 떨리는 귀뚜라미의 날개와 같은 마음으로 노래하고
걷고 또 걷는 개미의 집요함으로 다가가지요.
하지만 때론 가시 위를 지나는 달팽이와 같은 너그러움도 필요하답니다.

들리나요, 지저에 흐르는 물의소리가 한걸음 다가오죠.
단단한 돌벽을 감싸않는 부드러운 능소화덩쿨.
그 주홍빛 꽃을 따다 당신의 발치에 바칠게요.
그러면 당신은 그 샘에 물푸레나무 가지를 드리워줘요.

나지막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면,
바람은 다시 흘러가겠죠, 그 어떤 흔적도 없이.
그저 푸르게 물든 샘의 모습만 기억 속에 담아.
태고로부터 약속된 심원(深遠)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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