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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궤적/다이어리

마중


예정에 없던 갑작스러운 만남으로
귀가 시간이늦어 졌다.

서정리에 도착해 집으로 향하는 동안
해는 지고 휘엉청한 보름달이 떠올랐다.
물속에 잠긴듯 촉촉한 빛이다.
갑자기 걷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공기가 빠르게 식어가기 시작했으나
바람은 잠잠했다.

주위에 가로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안개 구름 사이로 몽롱히 빛나는 달빛과
간간히 있는 인가의 불빛에 의존해 걸어야 한다.
그러나 어둠은 두렵지 않다.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은 어둠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 있는 무엇인가다.

서서히 스며드는 어둠 속에서 아스팔트 길이
달 빛을 받아 하얗게 떠오른다.
몽롱한 밤의 풍경에 취해 걷고 있는데
길 앞에서 익숙한 고양이 소리가 들린다.

"야옹."

넬이다.

"야옹."

하고 답해주자 녀석도 다시 야옹 하고 대답한다.
집에서 오분정도 떨어진 거리였지만
이미 도착이라도 한듯 포근한 기분이었다.

머리를 쓿어주자 새처럼 '구루룩'하는 소리를 낸다.
잠시 머리며 등을 쓿어 주고
천천히 걷기 시작하자
녀석은 마치 강아지처럼
내 옆에 찰싹 붙어 따라 걸는다.

새하얀 길 위를
길다란 그림자 하나와
작은 그림자 하나가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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