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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해구아래/그밖에

단어연습 - 쉐이프 쉬프터 라이프 - 2 : 느리다, 늘이다, 늘리다


느리다 : 진도가 너무 느리다.(속도)
늘이다 : 고무줄을 늘인다.(길이)
늘리다 : 수출량을 더 늘린다.(양)






나는 느리게 주차장을 가로질러 아파트의 담벼락으로 다가갔다. 붉은 벽돌로 2.1m 정도 높이로 쌓여진 담벼락은 담쟁이덩굴이 늘어져 있었다. 나는 재빠르게 웅크렸다가 척추를 용수철처럼 늘이며 그 위로 뛰어올랐다. 나뭇잎이 앞발, 이어서 뒷발에 스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그 밖의 소리는 전혀 나지 않는다. 고양이일 때의 내 발바닥은 매우 부드러워 이런 충격쯤은 매끄럽게 흡수해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의 비틀거림도 없이 담벼락 위에 올라섰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높은 곳을 걷는 것은 좋다.

"멍멍멍멍!!!"

저런 성가신 개들과 실랑이를 할 필요도 없고. 나는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치와와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지나쳐버렸다.

개들은 성가시다. 저렇게 적대감을 보일 때는 더더욱 그렇지만(그럴 때 나는 목숨 걸고 도망쳐야 한다) 좋다고 늘어지는 때라고 해서 덜 성가셔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좋으면 그냥 좋은 거지, 개들은 왜 상대방에게 엉겨붙고 밀고 핥아 침 범벅으로 만드는 것일까. 내가 사람일 때는 작은 강아지 한두 마리쯤 매달려도 별로 어렵지 않을 테지만, 이런 작은 동물의 모습을 취하고 있을 때 상대하는 것은 정말 힘겹다. 게다가 그 크기가 말라뮤트나 골든리트리버 정도 되면 거의 악몽에 가깝다. 골든리트리버를 머릿속에 떠올리자 오싹한 추억이 떠올랐다.

아마 넉 달쯤 전이었을 것이다. 그 녀석은 이웃이 키우던 금동이라는 녀석이었는데, 이 녀석은 내가 사람 모습을 하고 있을 때 잠깐잠깐 놀아주곤 했었다. 그래서 내가 고양의 모습일 때 마주쳤을 때도 내 냄새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덤비거나 으르렁거리지는 않았다. 대신 그 무지막지한 몸으로 매달려 어리광을 부리며 침이 뚝뚝 늘어지는 혀로 전신 마사지를 해줬을 뿐이다. 그날, 망가진 내 모피를 손질하느라 거의 반나절이나 소진했다면 믿어지겠는가. 이건 절대로 과장이 아니다. 스며든 개침이 털을 서로 들러붙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냄새까지 지독하게 배어들었던 것이다!

잠시 지난날의 추억에 잠겨 있었더니, 나는 멈춰 서서 정신없이 털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몸을 부를 떨고 정신을 상기시켰다.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수위 때문에 시간을 조금 지체했는데, 헛되이 흘려보내는 시간을 늘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좁다란 담벼락 위를 기척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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