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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해구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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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로 산다는 것 눈에 보이는 것 보다 난로앞은 편치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양이로 산다는 건 생각보다 쉬울것이다. 너는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걷고 몸을 치장한다. 무례하게 뻗어오는 손길 사이에서 말 없이 상처를 치유하며 타인의 일인양 아픔을 억누른다. 때론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해도 거긴 너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누군간 그것을 빨강이라 부르고 다른이는 파랑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보라빛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발톱을 갈고 침묵하며 높은 곳을 향해 오르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완전히 새로운 풍경을 꿈꾸며.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글쟁이들의 글 이야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별과 그녀 그리고 아이스초콜릿 누군가 노래했지 별은 영원토록 빛난다고. 하지만 아침이 밝아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밤은 너무나 짧아. 매일 저녁, 그녀는 일상에 지친 몸을 끌고 카페의 문을 두들기지. 부르튼 거친 손에는 동전 두개와 구겨진 지폐 세장. 그리고 늘 이렇게 말해. "아이스 초콜릿 한잔주세요." 까끌한 손아귀에 쥐어지는 매끄러운 일회용 컵. 달콤한 크림을 베어물고 그녀는 기쁨에찬 아이처럼 커피향 가득한 카페를 나서네. 별과 그녀 그리고 덧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녹아드는 아이스 초콜릿. 흔적도 없이 사라질 별과 그녀 그리고 녹아드는 아이스 초콜릿. 지금 이 달콤한 순간. 내일 저녁, 그녀는 또다시 지친 몸을 끌고 카페에 들어서겠지. 나날이 식어가는 밤. 그러나 여전히 거친 손 내밀며 그녀는 같은 말을 하네. iPhone 에서..
그녀의 감기 대처법 제시문 : 감기라는 소제를 사용하여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녀는 평소와 다른 묘하게 들뜬 기분에 어리둥절해했다. 지난밤 밤을 지새워 가며 으르렁 거리던 이웃집 개들 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한 까닭인지 머리는 몽롱하고 무거웠다. 그녀는 이불 속에서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부스스해진 머리카락 사이로 서늘한 공기가 살랑거린다. 낡은 전기장판으로 데워진 이부자리 속과는 달리 방안의 공기는 시렸다. 오한에 몸이 작게 떨렸지만, 그녀는 곧 멍하니 일어서서 늘어진 가디건을 어께에 걸쳤다. 느릿느릿 주방으로 들어가 그릇을 꺼내고 씨리얼과 우유를 부어 말아 먹고는 다시 느릿느릿 그릇을 개수대에 가지고가 헹군다. 그리고 욕실로 들어가 천천히 샤워를 했다. 물기 촉촉한 머리카락으로 욕실을 나설..
단어 어느날, 네가 말을 걸어왔지. 바람에 날리는 잎사귀처럼 의미도 없이 가볍게 던져진 그 단어를 주워들었지. 후회할걸 알면서도. 오늘 또 넌 나에게 말을 걸었지. 언제나와 같은 단어로. 의미도 없이 가볍게. 여긴 너무 추워요. 내곁에 있어줘요. 나는 외로워요. 혼자두지마요. 그리고 다시 그 단어를 말해줘요. 손끝으로, 그 입술로 눈동자로, 머릿속에 속삭이고 또 속삭이지. 의미도 없이 가볍게. 후회할걸 알면서도 나는 다시 거기에 얽매이고 말아. 그리고 속삭이지.
반지 제시어 : 잃어버린 반지, 영수증, 계단 저기 저 푸른 숲속에는 도깨비 한 마리가 살고 있대. 그 도깨비는 마주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소원을 들어준대. 하지만, 명심해. 그건 딱 한 번뿐이래. * * * "여기가 맞나, 김군?" 그는 삐딱하게 서서 아파트 비상계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였기 때문에 계단은 여기저기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부스러진 흔적들로 가득했다. "그럼 맞고말고요. 여기가 분명합니다." 소년은 확언했다. "자, 저기 보세요. 저기 저 구석에. 그림자가 흔들리는 게 보이죠?" 과연 소년의 말대로 음습한 기운이 계단 쪽에서 솟아올라 배회하는 것이 보였다. 그는 여유 자작한 태도로 걸어 계단 쪽으로 향한다. 묘하게 웅얼거리면서 어디에서 들리는 건지 방향을 가늠하기 힘든 소리가 ..
가을이 걸어 내려오는 산에서 가을이 걸어 내려오는 산에서 메마른 낙엽이 내는 바스락 대는 소리가 들리나요. 낮고 따가운 햇볕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흘러가고 그러면 갈색 솔잎이 뺨 위로 떨어집니다. 검고 흰 바위 위, 담쟁이 넝쿨의 잎은 붉은빛. 하지만 겨울은 아직 먼 이야기입니다. 겨우살이의 열매는 지금도 노랗고. 건조한 공기에 시드는 이끼도 아직 푸르르며 숲의 향기는 투명한 초록빛이죠. 발끝에서 소리가 부숴 집니다. 내일이 오기 전에 사라질 작은 흔적이 생겨요.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다본 파란 하늘 밑 세상은 조그마해 모든 것이 단순하고 아름답게만 보이죠. 보세요, 그 벼랑 끝자락에 마지막으로 피어오르는 들꽃의 흰 빛이 선명하네요. 내일이면 질 꽃이지만 아직은 오늘입니다. 가을이 걸어 내려오는 산에서 왜 그리 서성이나요, 아직 오지도..
그, 그리고 그녀 제시문 시한부에 대한 한편의 짤막한 엽편을 적어주세요. 역순행적 구성을 따라주세요. * 링거 속의 액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고요했다. 모든게 지나치게 고용했다. 작은 새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 가지 소리 조자 없었다. 결국 나는 또 지난날 네가 만들어 내던 유쾌한 소음을 떠올리고야 만다. 마루 위를 걷는 맨발이 만드는 조용 조용한 울림. 너는 과자를 다 먹고나면 늘 아쉬워 투덜 거리며 봉투를구기곤 했다. 그때의 그던 바스락거리는 소리. 함께 나란히 앉아 책장을 넘길때 나던 종이가 스치는 소리, 그리고, 그리고, 남겨 두고 도망쳐야 했던 웃음 소리, 웃음 소리. 다시 격통이 밀려오고 네 얼굴은 점점 흐릿해진다. 팔다리가 뒤틀린다. 입술 사이에서는 인간의 것이라 생각 할 수 없는 끔찍한..
실수 당신은 갈망하던 초능력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이 달갑지는 않네요. 당신의 상황을 들어 그 이야기를 납득시켜 주세요. ----------------------------------- 어리석었다. 지금까지 나는 '무지는 죄다'라는 말을 늘 오만한 자의 헛소리라 여겨왔었다. 하지만 만약 할 수 만 있다면 어제 그 얼간이 같은 짓을 벌였던 나를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이런 비참한 기분에 휩싸여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스푼으로 팥 빙수를 거칠게 헤집었다. "오빠, 왜 그래요? 뭐 안 좋은 일 있어? 표정이 별로야." 나의 그녀가, 한 달 만에 만나는 그녀가 약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니, 이제 더 이상 그녀는 '나의 그녀'라 부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