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생문

(11)
커튼 흐릿한 날이지만 그래도 창문으론 빛이 스며든다. 빛은 커튼을 반쯤 통과하여 그 앞에 놓인 노란색 프래지아 화분을 화사하게 비춘다. 커튼은 상당히 얇고 부드러워 봄의 따스한 날씨에 어울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커튼이 겨울 동안에도 내도록 걸려 있었다는 것을 안다면 봄에 어울리는 것에 감탄을 하기 보다는 에너지 절약에 대한 집 주인의 무심함에 탄식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연한 상아색의 천. 그 위에 아주 흐릿한 연두색이 섞인 회색으로 무늬가 그려져 있다. 그 색상을 컴퓨터 그래픽 색상 번호로 표현 하자면 B1CF9A라고 적을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그렇게 표현하면 색을 정확히 지정 할수는 있으나 그다지 운치는 없을 것이다. 커튼 위에는 가로세로 14cm정도의 네모들이 교대로 그려져 있는 것을 눈치 채는 것..
CD-RW CD의 일종으로, 일반 공CD가 한번 기록을 한 뒤 재사용이 불가능 한 것과는 달리, 다시 사용이 가능한 물건이다. 즉, 그 안에 담김 내용을 지우고 자유롭게 다시 쓰기가 가능한 물건이란 말씀. 갑자기 ぼくらの의 오프닝 Uninstall이 생각 난다. 물론 생긴 모양은 일반 CD와 같다. 원판 모양에, 두께는 1.5mm정도. 지름은 자가 없어서 측정 불가. 원판의 한쪽 면은 은색 필름이 붙어 있다. 정보를 기억하고 출력 하는 것은 이 필름 부분으로, 손상이 가지 않게 플라스틱판으로 보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CD-RW는 별로 사용을 많이 하지 않아서 필름이 보이는 쪽에 긁힌 자국이 거의 없다. 뒤집어서 뒷면에 인쇄된 모양을 살피면 용량이 700mb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향을 맡으면 희미하게 비닐을 ..
거울 거울하면 일단 떠오르는 것은 차가운 감촉이다. 유리로 만들어진 이 물건은 반질반질 매끄러운 감촉과 단단하며 서늘한 느낌이 공존한다. 거울에 나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다면, 그것은 언제나 대칭으로 움직일 것이다. 결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간격과 속도로. 사실, 거울이 오늘날과 같이 유리로 만들어 진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그것은 유리를 만드는 기술 자체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것이 더뎠기 때문이고(유리 제조기법은 일급비밀이라 해도 좋았다), 그 뒤에 금속을 씌워 거울을 만든다는 발상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 후에 나왔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는 반질반질하게 잘 닦은 철판에 얼굴을 비춰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는 것은 파문이 이는 호수에 얼굴을 비춰보느니만 못했을 것이다. 시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