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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해구아래/그밖에

용의 이혼 상담


 용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거대한 몸을 천천히 움직여 오두막 앞에 서서 기다리자, 엘프는 오두막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작은 탁자와 의자, 서류를 들고 나와 현관 앞쪽에 내려놓았다. 엘프가 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용은 자신의 용건에 대하여 입을 열었다. 억눌린 목소리가 거대한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다름 아닌 그녀, 아나이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오.”


  그리고 용은 한참 동안 그녀와 자신간의 추억 - 함께 용암 사이를 거닐었던 이야기나, 수 백 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왕관을 선물 했을 때 그녀가 어떤 식으로 미소를 지었는지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음탕한 여자 같으니!"


  용이 갑자기 드래곤 피어를 내뿜었다. 기다란 목에서 브레스가 끓어오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마누라! 아니 지금은 마누라도 아니지. 그 여잔 나 몰래 바람을 피웠다고! 내가 뭐든지 다 해줬는데 말이야. 형편없는 창녀 같으니라고!"


  드래곤 피어는 시간을 더해감에 따라 점점 더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용은 목과 머리의 피막을 부르르 떨며 입술로는 용암처럼 뜨거운 브레스를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브레스가 떨어진 자리에는 작은 용암 웅덩이가 생겨났다. 허나 처음에는 작은 웅덩이에 불과 하던 그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크고 더 뜨겁게 변해갔다. 오렌지 빛으로 강열하게 빛나는 용암은 이제 죽이 끓어오를 때처럼 퐁퐁 솟아오르는 뜨거운 기포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용암의 연못은 엘프의 발치까지 흘러들어와 있었다. 금방이라도 치명적인 용암 방울이 튈만한 거리였다.

  계속 지껄이는 용을 바라보던 엘프는 곁눈질로 발아래를 살펴보더니 사색이 되었다. 그는 종이를 살펴보더니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글쎄요, 이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다음번 상담에서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얘기해봅시다."


  축객령을 내리고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킨 그는 용에게 기어들어 가는 듯 작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혼한 지는 얼마나 되셨죠?"


  용이 이빨들을 요란히 부딪치게 만들며 힘주어 말했다.


  "지난 5월로 17년 됐소."


  그 순간, 탁자에 불이 붙어버리고 말았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글쟁이들의 글 이야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