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날

(2)
꽃이 비치다 - 김선우의 사물들 김선우의 사물들 - 김선우 지음/눌와 [꽃이 비치다] 물론 축복 받아야 할 일이지만 귀찮고 싫은 '그날'을 어쩌면 이렇게 곱게 표현 할 수 있는지. 김선우의 말은 물을 닮았다. 고요하고 부드러우며 형태가 없지만 산의 모양 조차도 바꾸는 힘을 가진 그런 물을 말이다. 속도감이 있다거나 폭발적이지 않지만 마치 하얀 화선지에 찍힌 하나의 묵빛 점처럼 존재감이 있는 언어들. 가슴이 매말라 물기가 필요할때 조금씩 야금야금 아껴 가면서 읽어봐야 할 책.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책 읽는 사람들]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소녀의 초상 3 - 그날 그날, 늪 속에 서서히 가라앉아가는 나비처럼, 어둠 속에 숨어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던 소녀에게 내가 그리 말한 것은, 그리고 소녀가 그리 답한 것은 결코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굶주린 짐승마냥 늪가를 서성이고 있었으며, 소녀 또한 몇 날 며칠이고 그것을 지켜보아 왔으므로. 그 남자가 소녀를 가둘 우리로 이 숲을 택한 순간부터, 이 모든 것은 결국 언젠가 이루어지도록 이미 결정 지워져 있던 것이다. 만월이 떠오른 밤. 나는 홀로 남은 소녀를 유혹했다. 그녀 스스로가 나를 원하도록, 여린 품안에 이 흉폭한 기운을 품을 수밖에 없도록. 영혼에 새겨진 고독이라는 이름의 상처를 몇 번이고 헤집어. 그 순간 그녀가 떨고 있지 않더냐고 묻거든 나는 아니라고 답해야 할 것이다. 그 어둠을 품은 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