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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궤적/다이어리

어스름 질무렵





우리 집은 번화가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고
마을 버스조차 없는 시골이기 때문에
차나, 오토바이나, 자전거가 없으면
순전히 도보에 의지해서 장을 보러 나가야 한다.

발로 걸어가자면 40분에서 45분 정도 걸리는 거리.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곧잘 걸어다니던 길이라
나에게 이 길을 걷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논 사이로 길게 늘어선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나는 가고자 하던 도착지에 서있곤 한다.

장을 보고 돌아올 때쯤에는
이미 해가 천천히 저물어 가고 있었다.
밝은 오렌지빛 태양이 서쪽 하늘에서 가라앉아간다.
검푸른 동쪽 하늘에는 하얀 달이 떠오른다.

이때쯤의 들판과 하늘은 매우 아름답다.
평소와는 달리 검붉은 기가 어려 농도짗은 색을 띈다.
천천히 어둠이 스며들듯, 빛은 밀도를 더해간다.

오늘따라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이 청명하고 높아
저물어가는 태양과 선명한 색의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한무리의 새들이 하늘 위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향한다.

언제나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어둠이 스며드는 이 풍경들이 더 경이롭고
더 사랑 스럽게 느껴지는 것일 지도 모른다.

나는 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기 위해 발걸음을 늦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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