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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세상이여 안녕.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결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그 거대한 몸을 깊은 숲속으로 이끌어간다.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벗들을 찾아. 멈추지 않고, 머뭇거림도 없이. 지치고 노곤한 몸을 재촉하여 나무 그림자 사이로 서서히 걸어 들어간다. 걸음을 땔 때 마다 우아한 목과 다리가 흔들린다. 조용히 멈춰 서 있노라면, 그는 마치 한그루의 묘한 나무처럼 보일 것이다. 그 뒤를 따르는 것은 두발 달린 짐승들. 조용히 숨을 죽이고, 대지의 뼈와 나무의 살로 만든 송곳니와 발톱의 세운다. 탐욕에 그 혼을 맡긴 듯 번뜩이는 시선. 그는 천천히 움직이던 다리를 멈춘다. 두발달린 짐승들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멈추지만, 폭력에 익숙하지 않은 그는 벼려진 칼날을 결코 보고자 하지 않는다. 단지 하늘의 별을 올..
커피 - 맥스웰 하우스 오리지널 맥스웰 하우스 오리지널. 갈색의 금속 병에는 그렇게 쓰여 있다. 캔을 따자 픽 하는 공기가 흘러드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속 안을 들여다보지만 캔이 속이니 만큼 빛이 들어가지 않아 단지 검게 보일뿐. 캔을 기울여 입구 쪽으로 내용물이 약간 흘러나오게 한다. 마치 한약처럼 탁한 갈색의 액체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그 향은 한약과는 달리 약간 달달하면서도 씁쓸하다. 캔을 입가로 가져가 한 모금 머금는다. 커피향. 그리고 어딘지 달고나를 떠올리게 만드는 맛이 나는데, 탄산수소 나트룸 때문에 그런 맛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 해본다. 목이 말라서 벌컥벌컥 다섯 모금 만에 다 마셔 버렸다. 하지만 상당히 달달한 편이기 때문에 갈증은 해결 되지 않을 것이다. 물 떠와야지.
마치 달팽이 처럼 때때로 숨이 막힌다.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는 길 예견하지 못한 창날이 만들어내는 상처 올려다보고만 아득한 하늘아래 느끼는 현기증 그러나 빛나는 유리조각은 언제나 나를 매혹하고 바삭대는 바닥을 디디며 길고긴 붉은 흔적을 남겨. 서서히 마치 달팽이처럼 말라 비들어져가는 근육으로 한줌 남은 촉촉함마저 길가에 뿌리고 한발 다시 한발 내딛어 마치 달팽이처럼 구름이 태양을 가려 유리조각들은 빛을 잃고 끝을 알수 없는 깊은 샘은 매꿔지리라 그때가 되면 이 무거운 걸음도 한결 편해지리. 비를 기다린다 그래, 마치 달팽이 처럼 하염없이 ,하염없이.
단어연습 - 다리다, 달이다, 달리다 달그락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작은 약방 안을 울린다. 젊은 의사는 무료한 표정으로 약이며 그릇들을 정리 하고 있었다. 시게는 이제 막 5시 2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가는 건가.’ 멍하니 손을 놀리고 있는데, 등 뒤편에서 무엇인가 다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 하나, 둘, 셋을 세자 작은 그림자가 문쪽에 아른 거리더니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쌤요! 큰일 났심더!” 눈물을 그렁그렁이며 뛰어 들어온 까까머리 꼬마에게 그는 인사를 던졌다. “어, 욱이 왔냐?” “쌤, 큰일 났심더! 옷을 다리다 즈그 누나가 디었 심더!” “뭐? 옻을 달이다 뎄다고? 옻을 어디다 쓰려고 달여? 옻닭하게?” “아닙니더! 그 옻이 아니라 옷, 이 입는 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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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 달리 심므 어떤 화장품을 선택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화장품 가게에서 향수도 판다는 것에 착안, 제멋대로 향수로 결정지었다. 서랍을 뒤적거리다 상당히 오래된 향수 하나를 선택 했다. 나의 첫 향수. 그 녀 이름은 달리 심므. 살리바르도 달리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이 향수는 기묘한 병에 담겨있다. 코와 입술 모양의 이 병은 묘한 느낌을 풍긴다. 피부를 연상시키는 살몬 핑크빛의 액체가 아랫입술 끝자락에서 찰랑거린다. 연분홍빛 뚜껑을 살짝 열자 달짝지근한 향이 난다. 지나치게 달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고 농도가 짙은 복숭아며 백합의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우아한 여성을 떠올리게 한다. 이 향수를 보면 언제나 떠오르는 씁쓸한 기억이 한 가지 있다. 조금 우아하지만 새침하고 허언을 잘하는 여자아이. 마치 큰 비밀이라도 말하듯 가..
금상첨화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아껴뒀던 금상첨화를 꺼내먹었습니다^^ 동생이 생일 선물로 사준거예요. 자, 요기 이 공같은게 보이세요? 이게 바로 금상첨화랍니다. 금상첨화를 즐기려면 이렇게 조금 목이긴 병이 좋습니다! 뜨거운 물이 담긴 투명한 티포트에 넣으면 물을 빨아들이면서 천천히 가라앉아요. 그리고, 조금씩 잎이 펴지기 시작합니다! 속에 숨어있는 노란 국화가 보이나요? 국화는 우려낸 뒤 떠오를 때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실로 고정이 되어있습니다. 총 3송이 들어있네요^^ 보기도 좋고 향도 좋고 맛도좋아요^^ 국화 특유의 달달함과 쟈스민의 향기가 그득! 마음 같아서는 맛난 과자랑 같이 먹고 싶은데 다이어트 때문에 그냥 차만 마셨습니다. 사실 예뻐서 차만 마셔도 배가 부릅니다;ㅂ; 조금 가격이 비싸기는 하지만 ..
아, 이제야 알겠다 난 그늘이 있는 사람을 좋아 하는거였어요. 아니 어쩌면 그 사람을 좋아하는게 아니라 그 상처를 바라 보기를 즐기는 걸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