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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궤적/다이어리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한건 중학교때.
시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의 물건이었지만
쓰지않으면 견딜 수 없는 기분이었다.

고2 무렵이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국어와 문학 작문 수업을 제일 좋아했다.
내부에 있는것을 외부로 끄집어 내는 작업들은 즐거운 일이었다.

당시 국어와 작문을 당담하고있던 교사는
30대 초반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조용한 여자였다.
수업시간에도 결코 함부로 언성을 높히는 법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수업시간은 매우 조용했다.
나는 그녀를 퍽 좋아했다.

언젠가 그녀는 이런말을 했었다.
자신은 처음엔 작가가 될거라고 생각했다고.
교사가 되는일은 없을거라 믿었다고.
하지만 졸업할 무렵엔 그런 생각은 멀리 사라져버렸다고.
그리고 대부분의 대학동기들이 그러했노라고.

어느날,
그녀에게 내가 적은 시를 보여줄 기회가 생겼다.
우울하고 어둡고 슬픈데다 엉망인 시었다.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않지만
나는 그때 그녀가 했던 말만은 기억난다.

[이런 내용 말고 다른걸 써보는건 어떻겠니?]

그리고 당시 내가 쓰던 소설에 삽입했던 짤막한 예언구를 읽어보고는

[이쪽이 더 좋구나.]

라고 말했다.

그녀가 틀린 말을 한것은 아니다.
확실하게 그 예언구가 좀더 시다운 글이었다.
하지만 내가 하고있던
생각이나
기분,
마음을 더 잘 표현한 것은
그 엉망진창의 시였다.

그 뒤로 그녀에게 내가 사적으로 쓴 글을 보여주는일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글을 쓰고 있다.
여전히 엉망이지만
쓰는걸 멈추는 일은 없을것이다.
포기한다거나
내려놓는다거나 하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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