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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해구아래/사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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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색 그것은 치명적이며 이성을 마비 시킨다. 둘러 생각하는 여유를 강탈하고 원시적 충동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그것은 상처, 위기의 대명사이다. 때때로 그것이 적절한 양이 사용되었을 경우 적당한 활기를 가져 오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즉 이것에 지나치게 물들어 버렸을 경우엔 평상시에는 결코 하지 않을 행동마저 저지르게 만든다. 색에 촉감이 있다면 그것은 묘하게 부드럽고 달라붙는 감촉일 것이다. 끈적거리며 밀도 있는 질감. 그것은 밝은 빛 속에 있을때 보다 그릿한 불빛 아래 그림자에 뒤덮힌채 볼때 더 선명하게 전해져 온다. 향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깊고 쉽게 지워지지 않는, 그래서 오랜시간 동안 흔적을 남기는 그런 향일 것이다. 망막에 새겨진 충격 만큼이나 강열한.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
목련 그늘진 자리에 가느다랗게 뻗은 나뭇가지 끝자락에 그 꽃은 매달려 있었다. 꽃잎의 아랫쪽은 짙은 분홍빛이었다. 색은 꽃받침에서 멀어질수록 희미해진다. 잎 가장자리는 빛을 받아 살짝 투명하게 빛이 났다. 중앙으로 갈수록 그 빛은 줄어들고, 대신 농도 짙은 색이 그 자리를 메운다. 꽃잎은 가지 끝쪽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꽃이 지는 시기다. 조금만 더 바람이 강하게 분다면 벨벳처럼 부드러운 잎새는 거친 바닥에 떨어져, 밟히고 짓이겨진 뒤 볼품없는 갈색 조각이 되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은은한 향기는 선명하게 공기 속을 적시고 있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글쟁이들의 글 이야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흰 잔에 물을 담았다. 수면이 흔들거리며 하얀 형광등 빛을 반사하다 천천히 멈춘다. 컵 안쪽에는 작은 공기방울 몇이 매달려 있다. 살짝 들어 냄새를 맡아 보려 했지만, 감기 때문에 섬세한 표현이 어렵다. 그냥 촉촉이 젖은 냄새가 난다. 목이 탔기 때문에 잔을 들고 물을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입 안이 메말라 있어 단맛이 난다. 지하수이기 때문에 조금 거친 감이 혀끝에 느껴진다. 하지만, 서늘한 물은 열에 들뜬 입안을 식혀준다. 한결 편해졌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글쟁이들의 글 이야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다이어리 예전에 종이에 관한 사생문이 나와서 다이어리 표지를 묘사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때 그 다이어리는 이년전에 구입했던 것이고 상당히 꼼곰하게 적고 있었다. 지금 쓰고 있는 다이어리는 작년 6월에 구입한 것으로, 6~8월 중순 까지는 상당히 열심히 적었지만 그 뒤로는 듬성듬성 하얀 백지가 더 눈에 많이 들어온다. 이 다이어리는 정사각형 모양으로, 쉼표하나 라는 글이 적혀 있다. 곰곰히 기억을 더듬어보니 편안해 보이는 엷은 녹색과 편안해 보이는 안락의자 위에 높인 작은 집, 그리고 쉼표 하나라는 문구가 마음에 들어 집어들었던 것 같다. 다이어리의 재질은 최근 나오는 대부분의 만년 다이어리가 그렇듯 종이로 만들어져 있다. 첫장을 넘기자 '기억보조장치'라는 여섯 글자가 보인다. 이건 건망증이 심한 내가 ..
가스렌지의 불꽃왕관 불(火). 라이타불, 성냥불, 촛불 등.. 단, 불조심 유의하세요^^ 물론 맛은 안 보셔도 됩니다.. ;; 찻물을 올리기 위해 가스렌지로 다가가다 아직 나는 사생문을 쓰지 않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래서 가스렌지 불꽃을 관찰하기로 했다. 주전자에 물을 적당히 받고 렌지에 올린 뒤 번업! 탁, 탁탁탁탁 하는 소리가 나면서 붉은빛이 확 튀어 오른다. 완전연소가 되지 않아 희미한 가스 냄새가 퍼졌지만, 곧 사라지고 불꽃의 색도 푸른 빛으로 변했다. 주전자나 주전자를 지지하고 있는 네개의 철판을 날름날름 핥을 때만 간간이 다시 붉은색이 비칠 뿐이다. 일상적으로 따뜻한 불꽃이란 단어에 노란 색이나 붉은 색을 떠올리지만 사실 이 파랑색 불꽃이 더 높은 온도로 타오르고 있다. 거의 밖의 온도와 차이가 없는 ..
색연필 길이는 한 뼘 정도다. 정확히는 한 뼘에서 새끼손가락 두 마디 정도 부족한 길이. 처음 이 녀석을 받아 들었을 때는 조금 더 길었지만. 매끄럽게 깎인 육각 기둥은 광택이 나는 검은 빛으로 코팅되어 있다. 연필 자루의 끝자락에서 1.6cm 정도 위로 은빛 태가 둘려 있고 첫 번째 면과 세 번째 면에는 같은 빛으로 글자가 새겨져 있다. GERMANY SV Albrecht Dürer FABER-CASTELL SCHWARZ, BLACK 8200-1999*** 독일 알브레이트 듀러 파버 카스텔 검은색, 검은색 연필은 조금 울퉁불퉁 하게 깎여 있다. 연필 깎이가 없어 칼로 대충 다듬어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전히 제 멋대로인 것은 아니다. 이 색연필을 마지막으로 깎았을 때만은 적어도 연필깎이의 도움을 받았기..
개나리 유려한 줄기가 바람에 따라 휘청인다. 선명한 노랑빛 꽃잎들도 그에 따라 춤춘다. 숙제가 나온 때에서 너무 지나버려서인지 초록빛 나뭇잎들도 가득 줄기에 매달려 있다. 살포시 가지를 잡아 꽃잎을 뜯어봤다. 장미처럼 하나하나 떨어지지 않고 나팔꽃처럼 통으로 붙어 있다. 킁킁. 향을 맡아보았지만 딱히 뭐라고 표현할만한 냄새 느낄 수 없었다. 입에 넣어 씹어보자 인상을 찌푸리고 싶어질 정도의 쓰고 떫은맛이 난다. 진달래와는 달리 이 녀석은 먹을 만한 것이 못된다. 나는 펫페 하고 여러 번 침을 뱉어 버리고 말았다.
종이 - 다이어리 표지 최근 들어 내가 가장 자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는 것을 주제로 선택했다. 바로 다이어리. 2006년 11월에 산 물건이니까 2년이 넘었다. 하지만, 만년 다이어리라 그다지 시간의 흐름에 구에 받지 않는다. 이것은 수많은 종이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 표지를 묘사하기로 정했다. 이 종이는 빛을 비추면 광택이 돌아 코팅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손끝으로 문질러보자 매끈하게 미끄러진다. 색은 연한 하늘색. 그 주위에 주황색 펜 선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은 외각 쪽에 주로 그려져 있다. 새, 양치식물, 꽃과 열매, 나뭇잎, 줄기 들이 섬세하고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앞표지 쪽은 리본 속에 쓰여 진 SECRET GARDEN DIARY라는 글씨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아래쪽에는 열쇠 구멍이 그려진 둥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