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카페쇼에서 있었던 일이다.
카페쇼라는 이름에 걸맞게,
많은 부스들이 시음 행사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한 부스는 과일차와 허브티를 제공 하고있었다.
아무래도 차는 따뜻하게 마실때가 제일 맛있다보니
(게다가 겨울이라 아이스 티로 만들기는 좀 에러)
이 부스는 미리 우려둔 차를 캔들 워머로 뎁혀가면서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내가 막 그 부스에 도착했을때,
한 흑인 여성이 곤혹 스러운 표정으로 직원을 보며 뭔가 말하고 있었다.
억양은 좀 특이 했지만 그렇게 어려운 단어는 아니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티팟 쪽을 가리키며 이게 뭐냐고 묻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가리키고 있었던 것은
워머 속에 든 작은 캔들이었다.
(워머에 사용 되는 연료가 궁금했던 모양)
그런데 그 부스의 직원은 계속 동문 서답을 하고 있었다.
제법 능숙한 영어로 그 티팟에 들어 있던 차에 대한 설명만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흑인 여성은 고개를 저으며 차 말고 '이것'이 뭔지 다시 묻고,
직원은 또 다시 동문 서답을 하고 있었다.
답답했던 나는 중간에 끼어들어 직원에게는 그녀가 워머의 양초에 대해 묻는 것 같다고 통역해줬고
그 흑인 여성에게는 짧에 "캔들" 이라고 딱 한단어만 말해줬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확 밝아지면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녀는 티팟과 워머를 가리키며 직원에게 그것들을 판매하냐고 물었다.
그런데 직원은 또 동문 서답이다.
그 안에든 차는 오렌지 가향차이며 시음해보겠냐는 말을 한다.
이번엔 난 좀더 빨리 끼어들어 그녀가 티팟과 워머를 구매할수 있냐고 묻고 있는 거라고 통역했다.
그러자 직원은 우리는 오직 차만 판매하고 있다고 역시 능숙한 영어로 대답했다.
사실, 난 영어를 싫어한다.
아니, 싫어한다는 건 틀린 대답인것 같다.
사실 싫어할 뿐만 아니라 잘 못한다.
외국인 손님이 가끔 카페에 와도
대부분 한국 말로 대답을 하고 인사를 한다.
어떤 손님은 내 그런 모습을 보며 꿋꿋하다고 감탄까지 했다.
하지만, 사실 거기엔 어떤 철학이 있다기 보다는
단지 단순하고 짤은 문장이나 인사 한마디조차 쉽게 내뱉지 못하는
내 비참한 영어 실력 때문이다.
그 차 판매 부스의 직원은 나와는 비교도 할수없을 정도로
능숙하고 좋은 발음으로 영어를 구사했다.
그런데, 왜 그 직원은 그 흑인 여성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단지 머리로만 알고 있는 지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진정으로 이해하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원하는 것을 중심으로
자신의 사고 방식으로 상대를 파악하려는
굳어버린 사고방식.
사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암기하는 것에는 긴 시간을 쏟아부어왔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결코 배운 적이 없다.
간단한 예로, 수학만해도 그렇다.
우리는 구구단이 왜 그런 형태인지,
어떤 규칙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기도 전에
그 숫자의 나열들을 암기할것을 강요 받는다.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그 많은 법 조항들과 직책들이
무엇을 위해,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 졌는지는
결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러한 모습은 단지 교실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흔히 한국 사람들은 어디선가 마주쳐 통성명을 해도
그 사람을 '알고 있다.' 라고 말하길 즐겨한다.
알고 있다.
매우 긍정적이고 듣기 좋은 표현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알고 있다라는 것은
그러한 대상이 실존하는 것을 알고있다라는 수준에 그치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 대상의 사고 방식이나 욕구에 대해 이해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의미다.
당신이 진정으로 그 대상과 친밀한 관계였더라면
알고있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내 친구다."
혹은
"잘 아는 사이다."
라는 표현을 사용 했을 것이다.
알고 있다 라는 것은 대부분 일방적이거나
아주 단편적인 인간관계에서나 사용 할 수 있는 표현이다.
물론, 안다는 것은 모른다는 것 보다 긍정적이다.
허나, 정말 중요한 것은 안다는 것이 아닌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핸드드립 한잔을 마시더라도
내가 마시고 있는 그 커피의 이름을 알고 기억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커피가 주는 맛과 향, 질감과 바디를
느끼고 이해하는 것 이야 말로
진정 커피를 즐기는 태도라고 생각 한다.
(물론 아는 만큼 보인다고, 기초 적인 지식을 숙지하는게 더 좋긴 하다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던 하루였다.
(정작 너는 남을 얼마나 이해하냐고 물으면 할말이 없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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