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키는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랴다 보면 그 곳에는 언제나 별이 빛나고 있었다.
물가에서 천천히 기어오르는 안개 속을 해치며 걷던 좁고 긴 길 옆엔, 초록빛 벼이삭들이 흔들 거렸다. 때때로 으슥한 풀숲에서 길고 가느다란 뱀이 느리고 빠른 속도로 기어나와 내 앞을 스쳐지나가면, 난 한동안 멈춰서 그 뒤를 눈으로 쫓곤 했다.
누가 씨를 뿌리지도 않았는데도 홀로 무럭무럭 자란 능수 버들은 칡넝쿨에 휘감겨 휘청인다. 바람이 불면 버드나무 잎의 흔들림에 따라 칡 꽃 향기가 퍼저나갔다. 진하고 화려하며 원색 적인 향이다.
그 나뭇 가지에는 갈색의 요란한 볏을 가진 후투티가 날아들곤 했다. 그새를 보면 별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 행운의 가져다주는 새라 생각 했다.
어느해인가 아주 오래전 여름, 장마철에 비가 사흘 밤낯을 내려 논과 들판을 집어삼켰었다. 하지만 어린 나는 이 작은 언덕과도 같은 산의 품 안에서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그것을 내려다 보았다. 나에게 있어 지금 있는 그 곳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 였기 때문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사라지지 않을 그 어떤 것. 나의 기원과도 같은.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이름 한조각 남기지 않고.
뿌리가 잘린 나무처럼 시들어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