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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해구아래/사생문

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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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옅은 연분홍색의 꽃이었다. 섬세한 잎맥을 따라 우아한 빛깔이 번지듯 물들어 있다. 잎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빛은 흐려지며 점차 흰 색에 가까워진다.

  꽃잎은 총 열장. 조금 큰 다섯 개의 꽃잎과 교차하여 다시 다섯 개의 작은 꽃잎이 올라앉아 있다. 그 중심에서 샛노란 황금빛 수술들이 제 모습을 뽐낸다. 연녹색 암술은 그 가운데서 살그머니 웅크리고 있다.


  물결치듯 자유롭게 끝이 갈라진 꽃잎은 여린 깃털처럼 가벼워 보인다. 손끝으로 쓸어보자 약간 서늘하면서 매끄러운 촉감이 전해져온다. 작약을 닮은 미인이란 분명 이처럼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이를 말하는 것일게다.


  달콤하고 짙으며 깊이 있는 향이 피어오른다. 우아하고 고혹적이다. 마치 와인처럼 어딘지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향기다. 기분이 들뜬다. 꽃이란 이처럼 간단하게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만들 수 있는 것이었나.


 이토록 아름답기 때문에 작약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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