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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속의파도

prelude from Bach´s Cello Suite No. 1 -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



요요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첼로리스트
(이라고 해도 아는 사람이 몇 없지만)






므스티슬라프 레오폴도비치 로스트로포비치

요요마의 첼로가 감정적이고 섬세하다면
이분의 연주는 좀더 다이나믹하고 힘이 넘치는 느낌이 든다.





오늘날, 바흐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사후 100년간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우연히 멘델스존이 체코슬라바키아의 수도 프라하에있는 도서관 라데닝 문고에서
바하의 B단조 미사곡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잊혀져 있을 것이다.
그는 바하의 음악을 연구하는 회를 창립하여 조사를 시작했는데,
회에서 발견한 순서대로곡의 번호를 붙였다고 한다.

무반주 첼로모음곡 따라 붙는 번호는 BWV1009로
바하의 곡이 약 1300개 정도 되는 것으로 미루어
연구가 상당히 진행된 후에 발견 된 곡이다.
자그마치 200년 가까이 알려지지 않고있었던 것이다.

무반주 첼로모음곡이 세상에 들어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1717년말,
바흐는 바이마르를 떠나 작센 지방의 소도시 쾨텐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그곳의 곳 궁정악단의 악장이 되었는데,
쾨텐의 궁정악단에는 수석(首蓆) 바이올리니스트 시피스 외에
궁정악사의 자격을 가진 첼리스트 아벨이 있었다.
바흐는 이 두 사람을 위하여 여러점의 곡을 남겼는데,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전 6곡과
[무반주 첼로조곡] 전 6곡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바흐 사후, 이곡들은 모두 사람들이 뇌리에서 잊혀져 버렸다.

그리고 200여년 후,
한 소년이 바르셀로나(마드리드라는 설도 있었다)의 고서점에서
무반주 첼로곡의 필사본 악보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곡의 아름다움에 푹빠진 소년은
누구에게도 그 곡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지나,
소년은 자신의 연주회에서 처음으로 그 곡을 선보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존재도 세상에 드러내었다.
그는 바로 파블로 카잘스,
첼로리스트에게 혼을 불어 넣은 자로 불리게될 사람이였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전설이다.
실은 파블로 카잘스는 이미 출판 되어 있던 악보를 보았고
그 곡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려 깊이 감명을 받았던 것 뿐이다.
그에 대한 본인의 언급이 있어 옮겨적어봤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단지 연습곡 취급만 받던 무반주 첼로가
지금에 와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최고로 꼽는 곡들 중 하나가 될수 있었던 것은
파블로 카잘스 덕택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12살 때 대부분의 악기를 다룰 수있었고
13살 때 기존 첼로 기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간파한 그는
이 모음 곡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깨닳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십여년에 걸쳐 그 곡들을 연구하여 완벽한 형태의 연주를 성공 시킨 것이다.  

http://blog.daum.net/ohappydays/208 <-이곳에 가면 좀더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 만으로도 즐겁지만
이런 숨겨진 일화와 함께 감상 한다면
그 즐거움은 두배가 될 듯.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WILLIAM의 음악 이야기입니다. ^^]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