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깊은해구아래/그밖에

악몽



그것은 죽음이었다.

마치 중력이 존재하지 않다는 양, 그것은 팔과 다리로 천장을 디뎌 웅크리고 있었다. 거꾸로 매달린채 내려다보는 얼굴은 혐오스럽다. 눈. 검은구멍 같이 퀭한 눈동자 위로 코는 구멍만 남아 벌름 거린다. 피부 위에 칼로 그어둔 상처를 닮은 얇고 붉은 입술이 히죽 하고 웃는다. 뒤틀린 미소다. 

질척. 물소리를 내며 붉고 얇은 입술 사이로 검고 미끈거리는 혀가 미끄러져 나온다. 아니, 그건 혀가 아니었다. 미끄덩거리는 4개의 촉수가 검은 덩어리에서 빠져나온다. 민달팽이다. 그것은 천천히 미끄러져 나와 이윽고 완전히 붉은 구멍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침대 위로 떨어진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고 싶지만,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단지 조금씩 서걱거리는 침대보의 진동으로 그것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

두둑. 기분 나쁜 소리가 울린다. 우득, 우드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리며 천천히 그것의 목이 돌아간다. 우둑, 아드득, 까득, 빠드드득, 빠작, 빠직. 소리는 반 바퀴를 돌고 멈췄다. 이제 녀석의 얼굴은 나와 똑바로 마주하고 있다. 
 
뒤룩거리며 녀석의 시커먼 눈동자가 꿈틀 거리다. 자세하게 보니, 그건 녀석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실지렁이처럼 가늘고 긴 기생충들이 각막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안구 뒤편에 커다란 둥지라도 있는 것 마냥, 가늘고 긴 실들은 점점 늘어난다. 흐느적. 꿈틀. 그리고 더는 좁은 구멍 안에 갇혀 있을 수 없다는 듯 흘러 넘치기 시작한다. 투둑. 툭. 얼굴 위로 실밥이나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는 듯 미세한 충격이 가해진다. 두 번, 세 번. 그리고 떨어진 그것들은 숨을 곳을 찾아 꿈틀거리며 내 피부 위를 기어다니기 시작한다.

녀석의 입에서 또 검고 미끄덩거리는 것이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형태만 남은 콧구멍 속에서도 미끄덩거리는 무엇인가가 서서히 흘러나왔다.
추욱하면서 녀석의 목이 늘어진다. 점점 길게. 내 얼굴 바로 위로. 울컥. 목 울대가 움직이며 한 무더기의 민 달팽이가 또 기어 나온다.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고. 몸 위에 달라붙은 이 혐오스러운 것들을 모두 떨쳐 버리고 싶었다.

마침내 민달팽이가 얼굴로 쏟아져 내린다. 벌려진 입술 사이로 서늘하고 흐물거리는 덩어리들이 비집고 들어온다.

하지만, 나에게는 입술을 움직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글쟁이들의 글 이야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