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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해구아래/蝕:eclip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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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 울리기 무섭게 복도는 재잘거리는 아이들로 가득 찼다. 운율은 어수선한 공기 사이를 빠른 걸음으로 가로질렀다. 이사장실은 두 층 위, 본관의 제일 으슥하고 구석진 자리에 있었다. 대부분의 교직원들은 가기 꺼려하는 곳이다. 그의 아지트는 몇몇 수상해 보이는 물건들과 일부 악취미적인 책들, 그리고 서류더미로 들어차 있다. 진검인지 모형인지 모를 벽에 장식된 낡은 칼은 둘째치더라도 기묘한 모양의 탈에서 억지로 시선을 돌려 책꽃이에 관심을 쏟던 방문객은 알 수 없는 검붉은 얼룩진 가죽 책들을 발견하곤 도망치듯 그 방을 빠져나가곤 했다.

  그런 그의 사무실에서도 그나마 소박하고 편안한 -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정상적이라 할 수있는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이사장실의 문에 걸려있는 open/close 문패였다. 오일 파스텔로 화사하게 작은 꽃과 블루베리가 그려진 문패는 소문에 의하면 이사장의 와이프의 작품이라고 했다. 사실 문패는 너무나 소박하고 정상적이어서 사람들이 실내의 안쪽의 지나친 기과함에 더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패는 Close 쪽이 위로 향한채 걸려져 있었다. 그러나 운율은 무시했다. 그 문패가 open 쪽으로 돌려져 있는 경우는 기껏 해야 외부 손님이 사전에 약속을 잡은 뒤 방문하는 날 정도였으니. 

  “영감.”

  마침 갓 우린 따끈한 녹차를 입에 가져대던 이사장은 기미도 없이 벌컥 열린 문에 놀라 뜨거운 차를 그대로 들이키고 말았다. 그러나 운율은 그가 고통에 몸부림치거나 말거나 자신의 용건을 늘어놓을 뿐이다.

  "잘도 저런 아이를 찾아냈군."

  조금 전의 사건으로 위엄은 손상되었으나 뻔뻔함만은 건재한 이사장은 맨질맨질한 얼굴로 운율을 바라봤다.

  "왜 그런가, 운선생?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데?"

  "학생들을 수집하는 이상한 취미에 내가 장단을 맞춰줄 이유는 없다고 생각 하는데."

  운율은 냉정히 잘라 말했지만 이사장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후후후, 자네도 그 아이가 마음에 들었지 않나? 가르치기 싫다 그건가?"
  "……."

  대답 대신 침묵이 돌아오자 이사장은 능글맞게 웃었다.

  "그 애 그림을 봤구만?"
 
  운율은 대답 대신 질문은 던졌다.

  "어디서 발견한 거야?"

  이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지난 달, 각 학교 이사들 간이 모임이 있었던 거 기억하지? 거기 왔던 송이사가 말하더군. 자기네 학교에 있는 기묘한 아이에 대해서."

  그리고 운율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말을 이었다.

  "자네쯤 되어야 저 아이를 평범하게 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했지."

  그는 벽에 걸린 시계를 흘깃 바라보았다.

  "자, 수업 시작 하겠네. 어서 내려가 보라고. 예체능 전담 교사는 복수전공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놀고먹는 다는 말 듣기 쉽상이니."
  "방과 후에 다시 오겠어."

  그때쯤이면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그가 도망치고도 남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운율은 엄포를 놨다다.
  돌아 서는 그를 향해 이사장은 손을 흔들어 줬다.

  운율이 교실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쉬는 시간이 끝나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냥 아쉬운 아이들은 아직도 재잘거리며 수다를 떨 고 있었다. 나루도 몇몇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이 보였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전학생이란 호기심을 자극 하기 딱 좋은 소제이니.

  "주목. 쉬는 시간은 끝났다. 이제 수업을 계속해야지?"

  그의 말에 아이들은 아쉬워 하면서도 각기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기 시작했다. 나루와 함께 있던 아이들역시 서둘러 자리를 떴는데, 그러면서도 인사를 남기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 사이 제법 친해진 것인지 얼굴에는 허물없는 미소를 띠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우정은 얼마나 깨지기 쉬운 물건인가. 인간이란 자신과 다른 존재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조금이라도 자신과 다른 비정상적인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내밀어진 손과 친근한 미소, 다정한 말 한마디는 거부와 혐오로 탈바꿈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명한 처신이다.

  다시 정적이 교실에 가득 찼다.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이들은 봄의 나른한 날씨에도 금새 수업에 빠져 들었다.

  그는 천천히 아이들 사이를 돌아가며 그림을 확인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교정에 꽃들이 만발한 모습을 그렸다. 다채로운 상상력은 그 사이에서 놀거나 걷고 이야기하는 모습으로 펼쳐졌다. 개중에는 시선이 갈 만큼 제법 실력이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간혹 한 두 녀석 만이 전혀 엉뚱한 상상화를 그려두었거나 두족화 수준의 그림을 그리며 끙끙거리고 있을 뿐 이었는데, 웃고 있는 꽃 하나만 그린 녀석에 이르러서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운율은 나루의 앞에 도착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조용히 턱을 괴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따스하고 아름다웠지만, 운율은 꽃의 그림자 너머에 숨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독기 어린 집착과 서늘한 냉기를.

 “창 밖에 뭐가 있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운율이 질문을 던지자 그제야 그가 가까이에 온 것을 알아차린 나루는 깜짝 놀라 그를 올려보았다.

 “아, 선생님.”
 “…상당히 주의 깊게 바라보던데.”

 그녀는 살짝 멋쩍은 표정으로 미소 지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아, 네….”
 “흐음.”

 그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도화지를 내려다보았다. 미미하게 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김나루 맞지? 그림을 들고 잠시 따라오너라.”

 그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보는 동안 운율은 반장을 향해 말했다.

 “반장, 수업 시간 끝나면 그림을 모두 모아서 미술실로 가져와라.”

  그리고 성큼성큼 교실을 걸어 나갔다. 나루는 머뭇거리다 아이들이 수근 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며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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