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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해구아래/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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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스러운 2004년, 판소 카페 묘사 대행진에 내려고 쓰던 글이었는데 3000자를 4000자로 잘못 기억 하는 바람에 적기만 하고 참가는 못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시험 기간인데 공부도 안되고 하고 끄적였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녀석은 상당히 못난 얼굴을 하고 있다. 물론 길고양이치고 샴 같은 우아함을 지닌 녀석을 찾아보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나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녀석들이 눈에 띄기 마련이었다. 허나 녀석은 절대 그런 고고하고 깔끔해 보이는 고양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길고양이 중에서도 정말 못난 축에 속해있었다. 녀석의 머리는 밤톨 같이 둥글 넙적한 느낌으로, 마늘쪽 같은 작은 귀가 말 그대로 붙어 있는 식으로 달려 있었다. 눈은 심술궂은 모양으로 쫙 찢어져 있으며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는 코..
빨리 잠드는 방법 늦은 시간. 사위가 온통 어둠 속에 가라앉은 가운데, 희미한 달빛 속에서 풀벌레들이 노래한다. 이제 8월도 다 끝나가는 시기이건만 오늘따라 견디기 힘든 열기가 밤의 공기 속에 감돌고 있다. 소녀는 더위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불 속에서 한참을 뒤척이고 있었다. 속삭이듯 들리는 풀벌레 소리가 어서 꿈속에 빠져들라 채근하듯 조용조용히 울렸지만 잠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하나, 둘, 셋. 수를 헤아려 볼까. 아니면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우유를 마시는 거야. 머리맡에 양파를 가져다 두는 수도 있지. 몇 가지 잠을 이루기 위한 소소한 민간요법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지난날의 경험에 의하면 큰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웠다. 아니, 그보다는 귀찮음이 더 컸음이라. 그렇게 더위와 싸우며 침대 위에서 뒹굴..
戀心 1. 광기에 대한 이미지. 2. 직, 간접적인 감정 묘사. ---------------------------------------------------------------------------------------- 노파는 여윈 손으로 점토 덩어리를 반죽했다. 표면이 말라붙어 있었기 때문에 반죽을 누를 때마다 딱딱한 덩어리가 부서지며 미세한 먼지를 날린다. 그녀는 손끝에 걸리는 마른 가루 뭉치들은 꾹꾹 눌러, 가르고 부순다. 그리고 가볍게 물을 축인 뒤 섞기를 반복한다. 가끔 너무 단단해서 부서지지 않는 덩어리들이 손끝에 걸릴 때도 있는데, 그러면 그 들을 골라내어 옆으로 치워버렸다. 가늘고 주름진 손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고 확고한 손놀림으로 그 지루한 작업을 계속 이어나갔다. 꾹 꾹. 땀이 배어 나..
그 곳 그곳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러나 흔하지 않으며, 넓지도 좁지도 않고, 인적이 드물지 않으나 사람의 발길이 많지도 않는 작고 오래된 골목 귀퉁이 어딘가에 있었다. 그 나무문은 골목이 생길 때부터 자리하고 있었고, 이제는 마치 골목의 일부인 것처럼 흐릿한 인상을 풍겼다. 그러나 그 곳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에게 있어서 그 문은 특별한 것이었다. 머리, 혹은 가슴 속, 아니면 마음, 심장이라 불리는 것의 한쪽 구석에서 필요를 느끼면 언제든 방문 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원하는 만큼 머물다 내키는 때 떠날 수 있는 곳. 갈색의 낡은 나무문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만 큰 수고를 들일 필요도 없이 손끝으로 살짝만 밀어도 부드럽게 열린다. 안으로 들어서면 당신은 부드러운 커피 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빛이 ..
인사 어두운 곳(동굴, 방, 감옥 등 장소는 상관없습니다)에 혼자 있습니다. 다음의 예 중에서 하나의 상황을 선택해 써주세요. 1. 주변을 더듬다가 무언가를 만집니다. 2. 무언가가 점점 다가옵니다. 장문 단문을 한 번씩 번갈아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것은 네가 나를 떠난 지 한 달 하고도 일곱 번째 날에 벌어진 일. 눈이 떠졌다. 어떤 기척이나 소리도 없었지만 마치 무엇인가에 부름이라도 받은 듯, 나는 그렇게 갑작스레 꿈속에서 걸어 나와야 했다. 때는 깊은 밤. 평소 잠이 들기 전에 집안의 모든 불을 끄기 때문에 이 작은 방은 짙은 어둠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사위가 고요하다. 밤의 그 넓고 평온한..
잔인한 세상이여 안녕.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결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그 거대한 몸을 깊은 숲속으로 이끌어간다.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벗들을 찾아. 멈추지 않고, 머뭇거림도 없이. 지치고 노곤한 몸을 재촉하여 나무 그림자 사이로 서서히 걸어 들어간다. 걸음을 땔 때 마다 우아한 목과 다리가 흔들린다. 조용히 멈춰 서 있노라면, 그는 마치 한그루의 묘한 나무처럼 보일 것이다. 그 뒤를 따르는 것은 두발 달린 짐승들. 조용히 숨을 죽이고, 대지의 뼈와 나무의 살로 만든 송곳니와 발톱의 세운다. 탐욕에 그 혼을 맡긴 듯 번뜩이는 시선. 그는 천천히 움직이던 다리를 멈춘다. 두발달린 짐승들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멈추지만, 폭력에 익숙하지 않은 그는 벼려진 칼날을 결코 보고자 하지 않는다. 단지 하늘의 별을 올..
리히텐 스타인의 그림 잘 벼린 칼날에 빛이 반사되어 희게 빛났다. 손가락을 가져가면 금방이라도 베일 것 같다고 생각하자 더욱더 손을 뻗는 것이 두려워졌다. 자신도 모르게 입술에서 한숨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두려워할 여유가 없기에, 그녀는 자신을 채근하여 떨리는 손을 억지로 내밀어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형광등의 흰 빛이 칼날에 반사되어 눈앞을 어지럽힌다. 제단에는 마치 우유 같은 흰 빛의 피부를 가진 희생양이 조용히 눕혀 있었다. 갈색과 녹색의 흙투성이 옷들은 이미 발밑에 뜯겨져 바닥을 더럽히고 있었고 흰 피부는 정갈한 물로 닦이어 투명한 물방울이 어려 있었다. 평온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위로 조용히 숨결조차 멈춘 채 칼날을 가져다 댄다. 우아한 하늘빛 눈동자가 흔들린 듯 보인 것은 그저 칼날에 어린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