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람

(12)
들리나요, 문을 걸어 잠군 동굴의 문턱을 두드리는 바람의 노래. 따사로운 손길로 차가운 얼음의 벽을 어루만지고 있어요. 알 수 있나요, 오직 바람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기를 울리는 온기에 귀를 기울여 봐요. 그것이 말라비틀어진 진흙구덩이에 지나지 않았을 지라도 부드러운 바람이 그 옆을 스쳐 지나가며 갈색 풀더미들을 바스락 거리게 만들고, 톡, 토독 작은 도토리들 서넛, 장난 스레 샘 주변으로 몸을 굴리고 한 마리 붉은 물고기, 메마른 땅 위에 그 춤을 바치죠. 그것이 범해서는 안 될 터부라 여겨져 왔을 지라도 파르르 떨리는 귀뚜라미의 날개와 같은 마음으로 노래하고 걷고 또 걷는 개미의 집요함으로 다가가지요. 하지만 때론 가시 위를 지나는 달팽이와 같은 너그러움도 필요하답니다. 들리나요, 지저에 흐르..
다 타버려서 하얀 재가된 기분이야. 바람이 불면 형대가 헝클어져 날려가버릴 가볍고 약한 그런 잔재 말이야. 내가 가치 있다고 믿고 있던것, 진실이라고 여기던 형상들이 모두 착각에 불과했고 의도적으로 꾸며져온 모습을 본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을 믿고 있던 내 마음은 어디로 보내야 할까. 그럴때면 흔들리고 나약하게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내가 싫다. 땅위를 기어다니는 벌레가 된 기분이다. 살짝 건드려도 형체가 흐트러질 듯이 약한 생명체.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 칼릴 지브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 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바람의 열두 방향 - 어슐러 르귄 바람의 열두 방향 상세보기 어슐러 K. 르귄 지음 | 시공사 펴냄 SF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면 1순위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문학적 소양을 인정받는 장르 작가 르귄의 첫 단편집. 이 책에 실린 17편의 단편은 개인과 사회에 대한 깊은 사색을 아름다운 문장과... 르귄의 이야기는 언제나 저를 설레게 만듭니다. 처음 어슐러 르귄이라는 작가를 알게된 것은 아는 분들은 다 아실 땅바다의 이야기였지요. 그 세계관과 속에 담긴 철학은 아름답고 심오해서 저는 순식간에 그 이야기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도 흥미가 생겼지요. 때마침 우연히 서점에 간 저의 눈에 띄것이 저기 구석 어딘가에 놓여있던 '바람의 열두 방향' 르귄의 초기 단편들로 구성된 이 책은 그다지 대대적인 이슈를 불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