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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궤적/초록의 방

사랑초









어느 날, 창문 앞에 내버려두었던 화분에 꽃이 피어났다.
사실 그 화분은 처음엔 미니장미가 가득 심겨 있었다. 색색의 작은 꽃들이 화사히 피어나 서로의 미를 뽐내던 둥글고 빨간 화분. 하지만 장미들은 지난해 장마를 견디지 못하고 물러 죽어 버려 앙상한 가지 하나만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화분에서 짙은 자주색 싹이 돋아났다. 사랑초였다. 아마 화분을 팔았던 화원에서 사랑초를 심었던 흙을 재활용한듯싶었다. 투명하고 가냘픈 줄기 끝에서 하트 모양의 잎사귀들이 제 얼굴을 뽐내었다. 어여쁘기도 하고 장하게도 느껴져 꾸준히 물을 주며 보살피는 동안 사랑 초는 쑥쑥 자라났고, 그리고 결국 꽃망울까지 맺힌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본 며칠 뒤, 마침내 꽃이 피었다. 장미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함초롬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꽃은 오래가지 않았다. 여리고 옅은 빛의 꽃은 하룻밤이 지나자 시들어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몇 주 뒤, 화분에 새 꽃봉오리가 돋아났다. 역시 이번에도 꽃은 순식간에 피었다간 저버렸다.
그러기를 몇 차례, 어느 날부터 인가 돋아나던 꽃대는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늘었고 매일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수줍게 피어났다 진 꽃봉오리에 맺혔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씨앗이 떨어져 하나 둘 개체 수를 늘려간 것이다.
이제 화분은 사랑초로 가득해져 원래 심어져 있던 장미는 어느새 한쪽 구석에서 삐뚤게 누워 자라나고 있는 형편이 되었다. 주객이 전도된 형편이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이왕지사 피어난 것, 즐기면 될 것을.
이제 해도 서서히 길어지고 날씨도 따스해지고 있다. 지난주 삐쭉하게 키만 큰 장미 가지를 잘라 주었다. 아마 몇 주 뒤면 밑 부분에서 새 줄기들이 돋아나 좀 더 풍성해질 것이다. 그리고 사랑초의 그늘에 지지 않는다면 이 녀석도 어여쁜 꽃송이를 물고 나올 것이다.
그날이 기다려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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