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다. 차갑다. 겨우 잠들었나 했는데. 갑작스러운 불쾌한 습기에 소녀는 눈을 뜬다.
베갯맡이 축축하다. 처음엔 평소 습관처럼 침을 흘린 걸까 하는 생각이 짤막하게 머릿속을 스쳤으나, 젖은 부위가 지나치게 컸다. 생각이 깊어지는 동안 서서히 의식이 각성상태에 접어든다. 동시에 툭, 툭, 툭 하고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기 어린 울림이 귀에 들어온다.
소리의 근원은 바로 머리 위. 그제야 베게 끄트머리로 무엇인가 방울방울 떨어지는 둔한 진동이 뺨으로 전해졌다.
또 비라도 새는 걸까. 집주인에게 항의해야겠는걸.
귀찮은 마음에 옆으로 누운 상태 그대로 고개는 움직이지도 않고 한쪽 손을 머리 위로 뻗는다. 빠르지 않게 느릿느릿.
곧 소리의 근원에 도달한 손 위로 액체 방울이 떨어졌다.
톡, 톡, 톡.
차지 않았다. 오히려 체온에 가까워 살짝 뜨거울 정도. 액체는 물과는 달리 묘한 점성이 있어 느리게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제 천장에 구멍이 나서 빗물이 누수 되는 것이 아님은 증명되었다.
하긴, 창밖은 고요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위 빛나는 만월의 빛이 창가에 선명하다. 불 켜는 것도 귀찮았던 소녀는 달빛에 의지해 조용히 정체불명의 액체가 떨어지는 것으로 추정되는 쪽의 천정을 탐색한다.
처음, 그녀가 보인 반응은 입을 떡하고 벌리는 것이었다. 무엇인가 충격적이고 놀라운 일을 보았을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그것이긴 했지만, 그녀 경우는 조금 달랐다. 물론, 놀라긴 무척 놀랐다. 하지만 그것 보다는 그것의 '표정'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그를 모방한 것에 가까웠다.
그것은 머리 바로 위 천정에 달라붙어 있었다. 팔도 다리도 없는 주제에, 접착제로 붙여놓기라도 했을까. 아주 안정감 있는 느낌으로 천장에 들러붙은 거대한 얼굴이 입을 한껏 벌리고 있었다. 정상적인 사람의 얼굴과는 달리(이미 크기부터가 정상이라고 하기 어렵지만) 마치 가면처럼 넓적하고 평평한 얼굴. 눈도 코도 전체적 비율보다 기형적으로 조그마한 가운데, 거대한 입이 얼굴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었다. 흰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치아와 검붉은 혀 안쪽으로는 끝을 알 수 없는 길고 미끈미끈한 동굴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껏 벌어진 입에서는 여전히 똑, 똑, 똑 규칙적으로 침방울이 낙하한다.
넋을 놓고 입을 벌린 몰골로 그것을 바라보기를 약 오 분가량. 제정신을 차린 뒤에는 턱이 얼얼한 지경이었다. 사실 소녀가 정신을 차린 것도 그 얼얼한 턱 때문이었다. 한껏 벌어져 있었던 탓에 욱신거림은 쉬 가시지 않았다.
턱을 문지르며 그 기괴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저 녀석은 턱이 안 아프냐는 소소한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는 와중에도 침은 계속 떨어져, 베갯맡은 이젠 축축하고 비릿하고 끈적거림으로 가득했다.
아아, 정말 너무하네!
소녀는 짜증을 내며 누워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녀석은 여전히 입을 쩌억 벌리고 침을 투하한다.
뭐가 목적이야!
투덜거리며 소녀가 녀석의 얼굴을 살펴본다. 얼굴은 소녀가 일어나거나 말거나 움찔하지도 않는다. 대신 시선은 한쪽 구석에 고정된 채. 그 끝을 따라가자 스피커 옆에 놓인 쿠키 바구니가 보였다.
서, 설마 쿠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녀석의 입에서 침 분비량이 늘어난다.
맙소사, 너무하잖아!
소녀는 넌덜머리를 내며 침대를 빠져나온다. 그리고 바구니를 집어 든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녀석의 시선 역시 바구니를 따라 움직인다.
침대 위로 올라가 손을 뻗어봤다. 하지만 소녀의 키는 한참 모자랐다. 결국, 조금 실례이긴 하지만 좀 더 재미있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얏!
짤막한 기합과 함께 던진 쿠키는 거대한 입안으로 올바르게 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다물어질 줄 모르던 턱이 번개처럼 끌어당겨 졌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꿈틀거린다.
소녀는 벌리고 있을 때는 기묘할 정도로 커다랗던 입이었지만, 그렇게 오물오물거리는 모습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한참을 움찔거리던 입은 잠시 후에 다시 쩌억! 하고 벌어졌다. 그리고 다시 똑, 똑, 똑 침을 흘린다. 다시 한 조각 던져넣자, 역시 번개처럼 닫히는 입. 맛을 음미하는 듯 한참 우물거리던 입이 벌어지자, 소녀는 또 한 조각을 던진다. 그리고 또 한 조각, 또 한 조각.
뭔가 새 모이라도 주는 기분인걸? 하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쯤, 바구니는 완전히 비어 버렸다. 그러나 녀석은 여전히 만족을 못하는지 입을 한껏 벌리고 다시 침을 똑, 똑, 똑 떨어트린다.
이 상태로라면 끝도 없겠다며 한숨을 쉬는 찰나, 머릿속에서 가벼운 번뜩임이 스쳐 지나갔다.
소녀는 옷장으로 다가가 어제저녁 들고 나갔던 가방을 집어 든다. 그리고 제멋대로 들어차 있는 물건들 속을 헤집었다. 분명 마지막 하나가 남아있었을 터였다. 과연, 손끝에 작은 종이 케이스가 집혔다. 가방은 다시 옷장 한쪽에 던져 넣고 케이스 안에서 풍선검을 꺼내 들었다. 녀석의 작은 눈이 기대에 빛나는 것 같았다. 포장지를 벗겨 내고 소녀는 신중하게 풍선검을 겨누었다. 그리고 가볍게 던진다.
텁.
녀석의 표정에 드디어 만족감이랄 만한 것이 떠오른다. 우물, 우물 입술이 몇 차례 움직이더니 익숙하게 자그마한 풍선을 만들어내다. 그리고 풍선이 쪼그라들자 다시 빨아들여 입을 움직인다.
졸음 가득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녀는 축축해진 자리를 피해 베개도 없이 웅크린다.
그리고 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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