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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궤적/다이어리

세번째날



의자의 다리를 닦아 더러워진 걸래를 빨다보니
왼쪽 손등에 붉은 빛이 어른 거렸다.
무얼까 하고 내려다보자
선홍빛 작은 상처가 손등에 새겨 있었다.
차가운 물덕에 하얗게 변한 피부에 찍힌
붉은 빛이 유난히 예쁘게 보였다.

통증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상처가 있다는 것이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단지 언제 생긴 것인지 조금 궁금했을 뿐이었다.

천천히 걸래를 짜면서 되짚어보자
테이크아웃용 종이 트레이를 뒤적이다 
모서리에 살짝 긁혔던 것이 생각났다.
서걱 거림이 짧막히 떠올랐다 지워졌고
그제야 희미한 따끔거림이 상처에서 솟아올랐다.

자신의 둔함에 불평하면서 화장실을 나오는데
오른쪽손을 화이트 보드 모서리에 부딛쳤다.
쾅!
아픈 것도 아픈거지만 그 소리가 너무 요란해서
아픈 척도 못하고 주방에서 후다닥 나와버렸다.

오늘은 양손이 모두 수난이다.

거의 퇴근 시간이 다되어갈 무렵,
식빵 써는 기계 다루는 법을 배웠다.

"느긋하게, 끈기를 가지고 기다려야해요. 잡아다니면 찢어지거든요."

톱날은 아주 조금씩 기계적인 왕복운동을 했고,
그 위에 올려져 있는 빵은 중력의 힘을 받아
먹기 좋은 두깨로 썰어져 내려온다.
아주 천천히.

다 썰린 빵을 봉투에 담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손님들이 몰려 들어왔다.
오전에는 쿠폰을 손에든 공짜 손님만 3팀 왔다갔는데
정오가 넘어서자 신기하게 유료 손님만 왔다.
그중 한 아주머니는 헌책방겸 북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마실물 두병을 담아 달라고 하기에 떠다 줬더니
나를 향해 귀엽다고 한다.
삼각 러스크 두개, 소시지 페스츄리 하나,
베이글 두개를 고르곤 배달을 부탁 했는데
오늘 새로 출시한 번을 달라고 하려다 안식었다니까
나중에 다시 와서 사간다는 말을 남기곤 사라졌다.

이래저래 멍때리고 다른 손님 주문 챙기다보니
퇴근 시간을 30분이나 지나있었다.

나가는 김에 헌책방에 빵을 배달했는데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호호 웃더니
이름을 물어 보고는 자주 놀러오라고 한다.

귀여움을 받은 것 같기는 한데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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