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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해구아래/단편

戀心



1. 광기에 대한 이미지.
2. 직, 간접적인 감정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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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파는 여윈 손으로 점토 덩어리를 반죽했다. 표면이 말라붙어 있었기 때문에 반죽을 누를 때마다 딱딱한 덩어리가 부서지며 미세한 먼지를 날린다. 그녀는 손끝에 걸리는 마른 가루 뭉치들은 꾹꾹 눌러, 가르고 부순다. 그리고 가볍게 물을 축인 뒤 섞기를 반복한다. 가끔 너무 단단해서 부서지지 않는 덩어리들이 손끝에 걸릴 때도 있는데, 그러면 그 들을 골라내어 옆으로 치워버렸다. 

  가늘고 주름진 손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고 확고한 손놀림으로 그 지루한 작업을 계속 이어나갔다. 꾹 꾹. 땀이 배어 나와 주름진 이마 위로 맺혔으나 그녀는 잠시 멈춰 그것을 닦아 내는 나태함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노란빛이 도는 눈은 번뜩이는 시선으로 점토 덩어리를 주시할 뿐이다. 열정적인 침묵에 잠겨. 

  이윽고 점토 덩어리는 부드럽고 매끄럽게 변했다. 이제 그녀는 점토를 빚어 하나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한다. 

  새하얗고 작은 손가락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움직인다. 그것은 꽃 위에 내려앉는 나비와도 같다. 혹여나 형태가 부서질까 두려워하듯. 그러나 숨을 죽이고 먹이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마귀의 앞다리처럼 머뭇거림 없이 점토를 가르기도 한다. 기척도 없이 날카롭게. 

  고동색의 흉한 덩어리들이 점차 형체를 띠어간다. 이마와 눈, 눈썹. 코와 인중 아래로 단정한 입술이 자리 잡는다. 뺨, 턱을 지나 귀로 이어지는 우아한 선. 매끄러운 목과 쇄골. 그 모습을 바라보는 소녀의 연분홍빛 입술에 환희가 걸린다. 

  온기 없는 흙빛 입술 위로 소녀의 입술이 천천히 미끄러진다. 꽃잎을 닮은 입술을 타고 뜨거운 한숨이 흘러나온다. 따뜻한 온기가 잠시나마 차가운 진흙 덩이 위를 감돌았다. 살짝 감긴 눈꺼풀이 들뜬 듯 전율한다. 달콤한 떨림이다. 입맞춤.

  그리고, 금기를 범한 자는 언제나 그만한 대가를 치른다.

  비명, 고함, 그리고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

  처녀의 손가락이 아름다운 흉상 위로 박혀 든다. 그녀는 그것을 움켜쥐고는 책상 위로 내던졌다. 우상은 너무나도 간단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여인의 또 다른 폭력이 연심의 잔해 위로 쏟아진다. 침, 발작과도 같은 구토, 욕설, 자기 비하적인 언사, 발길질. 물병이 넘어지면서 테이블 아래로 떨어져 깨진다. 흙탕물과 함께 날카롭게 깨어진 유리 조각이 난산한다. 조각 하나가 다리로 튀었다. 예리하게 베인 상처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하얀 다리를 타고 흘러내린 붉은빛이 흙탕물 위로 조용히 엉켜든다.

  문 너머로 다급한 발소리가 들린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하나, 둘, 셋, 네 명. 그중 하나는 분명히 그일 것이다. 복도를 타고 울리는 구두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그와는 반대로 격하게 뛰던 심장의 울림은 잦아든다. 느릿느릿 하고 긴 호흡이 입술을 타고 흘러나온다. 그것은 엉망으로 어질러진 방 안의 풍경과는 달리 평온했다.

  문이 열리며 그들이 병실로 뛰어들어왔다. 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단정한 머리카락이 흐트러져있었다. 그 아래에서 다정하던 눈이 당혹감에 떨고 있었다.

  소년은 웃으며 답했다.

  “아무 일도 없어요, 선생님. 단지, 구역질이 나는 바람에 물병을 깨트렸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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