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깊은해구아래/단편

나의 사랑스러운


2004년, 판소 카페 묘사 대행진에 내려고 쓰던 글이었는데

3000자를 4000자로 잘못 기억 하는 바람에 적기만 하고 참가는 못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시험 기간인데 공부도 안되고 하고 끄적였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녀석은 상당히 못난 얼굴을 하고 있다. 물론 길고양이치고 샴 같은 우아함을 지닌 녀석을 찾아보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나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녀석들이 눈에 띄기 마련이었다. 허나 녀석은 절대 그런 고고하고 깔끔해 보이는 고양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길고양이 중에서도 정말 못난 축에 속해있었다.

녀석의 머리는 밤톨 같이 둥글 넙적한 느낌으로, 마늘쪽 같은 작은 귀가 말 그대로 붙어 있는 식으로 달려 있었다. 눈은 심술궂은 모양으로 쫙 찢어져 있으며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는 코는 작은 조약돌을 박아 둔 것처럼 느껴졌다. 또한 배는 늘 죽 처져 있었으면서도 두터워 보이는 꼬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도도하게 곧추서 있었다. 이렇듯 매우 비우호적인 시선을 던지고 싶게 하는 녀석의 외형 중에서도 결정타를 날리는 최악의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것은 진창에 담갔다 빨다만 걸레처럼 얼룩덜룩한 털가죽이었다.

고양이 중에도 얼룩이 있는 고양이는 상당히 많은 축에 속한다. 일단 우리나라에 있는 고양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길고양이들은 그 혈통이 마구 잡이로 뒤섞이기 때문에 얼룩이 없는 녀석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얼룩 있는 동물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눈가에 검은 반점이 있는 강아지라든가 이마에 애교 있는 줄무늬가 그어진 고양이들은 오히려 환영할 정도이다.

그러나 녀석의 몸을 뒤덮고 있는 얼룩은 정말 그 정도가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못난 것이었다. 얼룩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나는지 알기 힘들 정도로 제멋대로인데다가 짙은 갈색과 고동색, 황토색의 털이 제각각의 길이로 멋대로 자라있는 모습은 정말 녀석이 흙탕물 속에서 방금 걸어 나온 것처럼 여기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에겐 묘하게도 사람들이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아니, 실은 저런 굉장한 모습 자체가 한 번 더 돌아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도 있었다. 내가 녀석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역시 저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못생긴 모습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녀석이 언제부터 나타났는지는 알기 힘들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있었을 지도 모르고 내가 온 이후에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녀석을 만난 것은 이곳에 오게 된 뒤로부터 딱 1년이 되는 날이었다는 것이다.

그날은 지독하게 우울한 날이었다. 햇빛은 쨍쨍했고 구름은 한점도 없었다. 어릴 적 보던 책에서 말하던 좋은 날의 조건임이 분명했건만 나에게는 조금도 좋은 날씨로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이라는 바람은 모두 어디론가 도망이라도 쳐버렸는지 답답하고 끈적끈적한 공기가 내 숨통을 조여 왔고 발을 내딛을 때 마다 이는 흙먼지는 옷을 뿌옇게 물들어 있었다. 입고 있던 얇은 남방은 땀에 흠뻑 젖은 지 오래였다. 차라리 비라도 내렸으면 좋았으련만, 야속한 하늘은 나를 익혀버리기라도 할 작정인양 티 없이 맑고 파란 하늘만을 내려 줬다. 허나 하늘을 향해 욕을 한다 해도 저 심술궂고 제멋대로인 녀석이 순순히 들어줄 리가 만무하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투덜거리면서도 가파른 언덕을 올라갈 수밖에.

숨을 헐떡이며 무거운 발걸음을 놀렸다. 들고 있는 책의 무개가 내 팔을 길게 늘여버릴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이지 저 언덕 아래로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비싼 책이었기 때문에 봐준다는 심정으로 버텼다.

마지막 인내와 마지막 힘을 자아내어 결국 나는 그 언덕위에 올라 설수 있었다. 나는 승리감에 도취되었다. 온몸에서는 땀 냄새가풍기고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으며 옷은 먼지투성이였을 것이 자명했지만 그런 것은 전혀 눈치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도취되어 있었던 것이다.

‘봐라, 하늘아. 네가 나를 시기하여 이런 시련을 내렸지만, 나는 가뿐하게 이 시련을 이겨 낸 것이다!’

누가 들었으면 미친 것 아니냐며 손가락질 할만한 소리를 마음속으로 크게 외치며(그래봤자 가슴속인데 커봤자 얼마나 크려고) 땀을 식히기 위해 기숙사 앞에 있는 벤치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녀석과 눈이 마주치고 만 것이다!

녀석은 시원한 그늘아래 몸을 길게 누이고 유우자작하게 혀로 털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그늘 밑에서 쉬려던 생각도 잊고 그 오묘한 털가죽을 살피고 말았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녀석의 털은 정말 전에 없이 이상한 무늬를 이루고 있었다. 허나 그것을 손질 하는 녀석의 모습은 마치 화려한 갈기를 다듬는 사자마냥 도도하기 이루 말한 수 없었다. 정녕 카리스마까지 느껴질 정도로 당당한 털 고르기였다.

그러다 녀석이 나의 기척을 눈치 챘다. 호박에 칼로 흠집은 내놓은 듯한 찢어진 눈이 번뜩이며 노려보았다. 이에 당황한 나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여 녀석과 대치 아닌 대치 상태를 이루고 말았다. 분명히 녀석은 못생긴 도둑고양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강한 압박감이 어깨를 짓눌러왔다. 그 눈. 그 쭉 찢어진 눈이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환상이 들 정도였다.

‘고양이인 나도 이렇게 청결한 몸가짐을 하고 있는데 인간인 주제에 그렇게 더럽다니! 내 근처엔 오지 말라고!’

물론 고양이가 정말로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쪽으로는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기억 상으로는 그 대치 상태는 약 5분쯤 지속 되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 하면 황당하단 생각이 들었다. 대체 도둑 고양이과 눈싸움을 하느라 5분 동안이나 땡볕 아래에 서있는 것이 말이 되냔 말이야.

여하튼 길고도 짧은 시간이 끝난 뒤 녀석은 허무 하리 만치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마치 나 같은 것은 조금도 관심 없다는 듯. 도도하게.

며칠동안 그 뒷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화가 났다. 고작 고양이에게 겁먹어서 이 나의 고운 피부를 태양 아래 노출 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는 당장 탐문에 들어갔다. 주위 사람들에게 그녀석에 대하여 물어보자 벤치에서 얼쩡거리기 시작 한 것이 몇 주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날부터 벤치 앞을 지날 때 마다 그 밉살스러운 녀석을 찾게 되었다. 머리 속으로는 온갖 복수를 꿈꾸며.

허나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더 이상 그 벤치에서 녀석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조금 전에 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그때마다 헐래 벌떡 그 곳으로 향하지만 이상하게 녀석의 모습을 찾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허탕 치는 횟수가 늘어 날 때 마다 나의 복수심은 커져만 갔다. 그와 함께 녀석을 제압하기 위함 아이템-개다래 열매, 고양이 먹이 등- 역시 다양해 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시간이 왔다. 녀석을 만난지 일주일이 되던 날. 나는 지난주와 마찬 가지로 무거운 책들을 들고 비탈길로 올라서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이날 역시 하늘이 심술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따사로운 태양 빛이 나의 온몸을 열심히 달궈주었다. 아스팔트가 깔린 길은 봄도 아닌데 아지랑이가 아른거렸다. 그러나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언덕길을 정복했다.

‘하하하! 봐라, 태양이여! 나는 네가 던진 시련 따위는 가볍게 이겨낼 수 있단 말이다!’

역시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나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여 벤치로 다가갔다. 그리고 번뜩이는 호박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곳 들은 참으로 두서없고 비논리적이었으며 황당하기 그지없는 것들이었다. 아주 큰 것부터 소소 한 것 까지 갖가지 상상이 머리 속에서 뛰쳐나오려 버둥거렸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자잘한 사념들을 쓸어버리고 내 머리 속에서 승리를 차지 한 것은 참으로 단순한 충동이었다. 나는 그 충동을 이겨 내지 못하고 그대로 몸은 맡겼다. 즉, 벤치 가까이로 다가가 고양이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이며 쯧쯧쯧- 하는 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한 이 행동에 심히 당황하고 말았다. 정말 겨우 생긴 기회인데 그동안 꿈꿔온 복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아니 복수는 둘째 치더라도 부른다고 저 고양이가 내게 다가올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 밉살 스러운 녀석이 순순히 내게로 다가와 그 둥글넙적한 머리를 내 손에 비비적 거린 것이다! 밉살스러운 실눈이 애교있게 휘었고 갸르릉 거리는 소리가 내 귀를 자극 했다.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털의 감촉이 묘하게 설레인다.

아아.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고양이 녀석이 미웠던 것이 아니다. 그저 신경쓰여서 어떻게 할수 없을 정도로 좋아 하고 있던 것 뿐이다. 자신도 모르게 바보 같은 미소가 얼굴에 걸렸다.

"하, 하하하."

나는 멍청한 웃음을 흘리며 작열 하는 태양도 잊고는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열 중했다.



PS. 다음날 아침, 후배 녀석이 그 못난얼굴의 고양이와 다정하게 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떻게 된거냐고 묻자 후배녀석 왈,

"부르니까 오던데요?"

흥! 그녀석의 정체는 지조 없는 들고양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이미 사랑에 빠진 것을.그러니 오늘도 기다려라!! 나의 사랑스러운...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글쟁이들의 글 이야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깊은해구아래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지  (2) 2011.11.08
고양씨와 늑대씨  (4) 2010.11.03
빨리 잠드는 방법  (4) 2010.01.18
戀心  (0) 2008.12.08
그 곳  (0) 2008.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