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깊은해구아래/단편

리히텐 스타인의 그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잘 벼린 칼날에 빛이 반사되어 희게 빛났다. 손가락을 가져가면 금방이라도 베일 것 같다고 생각하자 더욱더 손을 뻗는 것이 두려워졌다. 자신도 모르게 입술에서 한숨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두려워할 여유가 없기에, 그녀는 자신을 채근하여 떨리는 손을 억지로 내밀어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형광등의 흰 빛이 칼날에 반사되어 눈앞을 어지럽힌다.


  제단에는 마치 우유 같은 흰 빛의 피부를 가진 희생양이 조용히 눕혀 있었다. 갈색과 녹색의 흙투성이 옷들은 이미 발밑에 뜯겨져 바닥을 더럽히고 있었고 흰 피부는 정갈한 물로 닦이어 투명한 물방울이 어려 있었다. 평온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위로 조용히 숨결조차 멈춘 채 칼날을 가져다 댄다. 우아한 하늘빛 눈동자가 흔들린 듯 보인 것은 그저 칼날에 어린 빛이 보인 착각에 불과할 것이다. 붉은 머리카락 아래에 자리 잡은 눈썹은 마치 화가 난 듯 치켜 올라가 있었으므로.


  잠깐의 망설임 끝에, 칼날은 잔인한 춤을 추기 시작한다. 희생물의 여린 피부 속으로 서늘한 금속 조각이 파고든다.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그 작은 몸을 반으로 가른 뒤, 다시 그 것을 작게 토막 낸다. 그녀는 그것이 아주 작은 직사각형이 될 때 까지 결코 손을 멈추지도,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저 마치 이 끔찍한 행위를 어서 끝내고 싶다는 듯이 기계적으로 손을 놀릴 뿐이었다.


  이윽고 칼날이 그 춤을 멈추고 여인의 손에서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냈을 때,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는 촉촉이 물기가 어려 있다. 맥 빠진 미소가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하, 하하하하!”


 그녀는 천천히 가느다란 손가락을 들어 올려 눈시울을 훔치려다 말고 멈추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엄마, 엄마! 양파 다 썰었어요! 그런데 눈이 너무 매워서 아무것도 안보여. 도와줘요!!” 

'깊은해구아래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빨리 잠드는 방법  (4) 2010.01.18
戀心  (0) 2008.12.08
그 곳  (0) 2008.12.05
인사  (0) 2008.10.11
잔인한 세상이여 안녕.  (0) 2008.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