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 것은 이미 이틀전인 11월 27일에 본 영화였다.
하지만 나는 그냥 그 영화를 보기로 마음 먹었는데,
달리 보고 싶은 다른 영화가 없었던 것도 그렇지만
마침 시간대가 잘 맞아 떨어지기도 했고
나는 마음에 든 영화는 몇 차례
반복해서 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함깨 동행한 사람이
그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듯 했기 때문이다.
(그래, 사실 그 이유가 제일 컸다)
이 영화에는 불분명한 요소들이 무척이나 많다.
왜 사람들의 눈이 멀게 되었는가.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사람들이 그 것이 전염되고,
또 무엇 때문에 일부는 눈이 멀지 않았던 거일까.
그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영화가 끝날때까지 주어 지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것은 왜 눈이 멀었느냐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보였느냐 는 것이다.
그런 상황 설정은 어떤 인과적인 흐름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미스트나 우주 전쟁, 로드 처럼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만들어낸 무대라는 느낌이 강하다.
정체불명의 질병에 사람들이 겉잡을 수 없이 실명해 가자
정부가 택한 길은 그들을 작은 건물안에 고립시키는 것이었다.
실명과 병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큰 나머지
그들은 눈이 먼 사람들을 건물 안에 가둬버리고는
대화를 나누려는 시도 조차 하지 않았다는다.
식량마져 충분하게 공급하지않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외부 세계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식으로 분리된 그 공간은
하나의 작은 세계와 같은 특수 성을 띈다.
그 폐쇠된 병동에서의 생활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하이힐. 그저 아름답기에 신고 다니던 그 신발이 얼마나 위험스러운 물건인지,
아무런 제제도 없이 단돈 몇천원에 구입하던 항생제들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의복과 나체를 통하여 느끼던 수치심이라던가 깨끗한 옷과 화장실 청결한 주변 환경등...
그리고 도덕과 법규.
항생제를 요구하는 의사에게 경비병들은
가까이 다가오면 사살해 버리겠다는
차가운 경고만을 돌려준다
처음, 제 1 병동에서는 작은 혼란 스러움이 있어지만
그들은 그 혼란을 잘 극복하고 화합하여 문명인 다운 태도를 잃지 않았다.
소소한 도덕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그들은 서로 한발씩 양보하여 협력하고
눈이 멀지 않은 그녀의 도움을 받아서 차츰 살아가는 법을 새롭게 익혀나가다.
허나 시설에 수용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들을 직접적으로 통제 하는 외부의 압력이 없이 내적으로 모든 것을 규제해야 하는 순간
자신을 왕이라고 칭하는 이가 제 3병동에서 나온다.
그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지켜오던 소박한 룰을 깨버리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법을 다시 세운다.
총이라는 폭력의 힘을 빌어
권력을 잡은 3병동의 리더
폭력.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일방적인 폭력.
그리고 감정적인 대응과 공정하지 못한 대우.
강압과 물질적인 제물에 대한 수탈.
그리고 성의 화폐화.
허나 그들은 왜 깨닳지 못한 것일까.
긴 세월동안 인간이 법이라는 틀을 만든 것은 결국 나 자신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서라는 것을.
그 룰의 밖으로 나가 제멋대로 행동해 버린다면 상대방도 그를 어기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다는 것을.
폭력에 의한 지배는 더 큰 폭력에 노출 된다는 것을.
결국 제 3병동의 왕은 암살당해버리지만 권력의 맛에 취한 3병동의 사람들은 수탈을 멈추지 않는다.
허나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이 그냥 나온 것이겠는가.
결국 그들의 비인간적인 행태에 분노한 1병동의 한 여인에 의해 그들은 모조리 불에타 사그러진다.
3병동의 왕이 죽은 뒤,
그들의 보복에 대항해 항쟁을 준비하던 1병동 사람들은
가장 먼저 화제를 알아 차리고
대부분 무사히 병동을 빠져나온다
불에타 무너진 시설 밖에는 더이상 경비들이 지키고 있지 않았다.
이미 그들도 실명하여 세상은 오직 눈먼자들만 존재할 뿐이다.
그중에 단 한명, 눈이 멀지 않은 그녀의 뒤를 따라 1병동의 사람들은 조용히 나아간다.
폐허가 된 도시.
약탈이 끊이지 않고 모든 것이 정지해 있으며
으슥한 곳에서는 시체를 뜯어먹는 야생화된 개들이 보인다.
눈먼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눈이 멀지 않은 것들은 동물들 뿐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1병동의 사람들은 의사 부부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문명의 안락함, 따뜻한 집과 가족의 의미를 재 확인하며
서로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다.
이때 여인들이 주고 받는 대화가 인상적이다.
"우리 모두 이전에는 더 아름다웠다는 것 만은 분명해요."
(그냥 기억에 의존해 적은 것이기 때문에 틀릴 수있다)
그리고, 그들이 그 평온한 생활의 행복에 감사하고 있는 동안
처음 발병했던 일본인 남자가 시력을 되찾는 사건이 일어난다.
자신도 시력을 되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얻은 그들은
순수한 기쁨에 젖어 그에게 일어난 기적을 축복해 준다.
유일하게 앞을 볼수 있어기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으나 이제는 그 짐을 내려둔 여인은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눈을 뜨고 있는 나는 무엇을 깨닳은 것 일까."
마지막 대사가 여운이 남아서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상당히 오래 동안 스크린을 바라 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