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 소녀
소녀의 팔은 가늘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저기 저 뒷동네 나무꾼 돌쇠 자식의 팔을 세 토막 내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구태여 내 팔로 따져야 한다면 아마도 반 토막을 내야… 아니, 반에서 쪼~끔 더 보탠 정도라 해야 할 것이다.
… 그래, 나 팔 계집애처럼 가늘다, 어쩌라고! 다 부모님이 이리 낳아주신 탓인데! 굵다란 산삼 몇 뿌리를 캐어다 먹어도, 하루 종일 도끼를 휘둘러 장작을 패어 봐도 그대로인 것을. 난들 노력을 안 해본 줄 아나!
음, 말이 좀 세었군. 맞다, 중요한 것은 내 팔 굵기가 아니다. 바로 저 소녀가 평생 숟가락보다 무거운 것은 안 들어 봤을 것 같은 가느다란 팔로 두꺼운 칼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끙끙 거리면서 힘에 겨워 휘두르는 것도 아니다. 그냥 여름날 그늘에 앉아 더위에 부채질 하듯이 붕붕 소리가 나도록 흔들고 있는 것이다.
내 시선이 좀 부담스러웠는지 소녀는 조심스럽게 칼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었다.
“저… 제 자세가 좀 이상했나요?”
이상하기는! 그게 이상한 거면 세상에 제대로 박힌 게 하나도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상한 건 그녀의 검로가 아니라 그렇게 멀쩡한 동작이 나올 수 있게 하는 그 힘이란 말이다.
뭐, 그런 이야기는 하나 마나지만. 결국 나는 아무런 대꾸도 않고 그냥 문제없다는 투로 손을 휘휘 저어주었다. 그러자 소녀는 고개를 꺄웃거리다가 다시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휘익
-사라락
-사라락
다시금 칼을 휘두르는 궤적을 따라 다시 얇고 하얀 소맷자락이 흔들린다. 히야, 기가 막히는군. 그 깔끔한 검로를 바라보며 나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멍한 시선을 보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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