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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해구아래/사생문

커튼


흐릿한 날이지만 그래도 창문으론 빛이 스며든다. 빛은 커튼을 반쯤 통과하여 그 앞에 놓인 노란색 프래지아 화분을 화사하게 비춘다.

커튼은 상당히 얇고 부드러워 봄의 따스한 날씨에 어울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커튼이 겨울 동안에도 내도록 걸려 있었다는 것을 안다면 봄에 어울리는 것에 감탄을 하기 보다는 에너지 절약에 대한 집 주인의 무심함에 탄식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연한 상아색의 천. 그 위에 아주 흐릿한 연두색이 섞인 회색으로 무늬가 그려져 있다. 그 색상을 컴퓨터 그래픽 색상 번호로 표현 하자면 B1CF9A라고 적을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그렇게 표현하면 색을 정확히 지정 할수는 있으나 그다지 운치는 없을 것이다.

커튼 위에는 가로세로 14cm정도의 네모들이 교대로 그려져 있는 것을 눈치 채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안에 그려져 있는 무늬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좀 더 주의력이 필요하다. 무늬는 매우 단순하다. 하나는 연두 빛 도는 회색으로 체크무늬가 빼곡히 들어서 있고, 하나는 아이보리 색 천위로 드문드문 옆으로 뉘인 다이아몬드 모양이 그려져 있다. 단순하지만 그래서 쉽게 질리지 않는다.

손을 뻗어 커튼 한쪽 자락을 쓰다듬어본다. 매끄럽고 손끝에서 스르르 미끄러지는 감촉이 전해진다. 물을 적신다면 스며드는 것은 거의 없이 바닥을 흥건하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라이터라도 가져다 댄다면 금세 오그라들고 좋지 않은 연기를 가득 뿜어내겠지. …좋지 않은 상상은 그만하자. 생각만으로도 목이 아프다.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자 은은한 광택이 도는 옥색 벽지와 커튼이 제법 잘 어울리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커튼을 살 때 벽지까지 생각 하고 샀을 것 같지는 않지만 보기에는 제법 흡족하다.

글을 쓰고 있는 동안 구름이 조금 옅어진 듯, 좀 더 따스한 빛이 커튼 사이로 비춰진다. 이 앞 벚나무에 하얀 꽃들이 가득하던데, 나가서 눈요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언뜻 스친다.

그래서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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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디카를 가져가 버려서 안타깝게도 사진은 못찍었습니다;

(그러니까, 벚꽃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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