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인 후미키가 자신만의 비밀장소인
낡은 폐공장의 서재에서
느긋한 자세로 쇼파에 길게 엎드려
푸른 담배 연기를 날리며 읽어 나가던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단어의 나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모두 간파 하지 못하면서도
나는 그저 그 문장들에 매혹되어
몇번이고 그 시를 반복하여 읽었다.
"서(序) ; 봄과 수라"
'나'라고 하는 현상은
가정(假定)된 유기(有機) 교류 전등의
하나의 푸른 조명입니다.
(모든 투명한 유령의 복합체)
풍경 속 모든 것과 함께
끊임없이 깜박거리며
아주 또렷이 켜져 있을
인과(因果) 교류 전등의
하나의 파란 조명입니다.
(빛은 영원하며 그 전등은 사라지고)
이 시들은 22개월의
과거라고 감지된 방향으로부터
종이와 광물질 잉크를 이어서
(전부 나와 함께 명멸하고
모두가 동시에 느낀것들)
지금까지 계속 보존되어 오던
그늘과 빛의 한 구절마다
말 그대로의 심상스케치입니다.
이 시들에 관해서 사람들과 은하와 수라와 성게는
우주먼지를 먹거나 공기와 소금물을 호흡하면서
각각 신선한 존재론(存在論)도 사색하겠지만
이 시들도 필경 하나의 마음의 풍물(風物)입니다.
다만 확실히 기록된 이들 풍경은
기록된 바 그대로의 경치이고
그것이 허무라고 한다면 허무 그 자체로서
어느 정도까지는 우리 모두에게 공통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어 전부인 것처럼
전부는 각각의 안에 있는 모든 것이므로)
그렇지만 이들 신생대 충적세(沖積世)의
거대하게 밝은 시간의 집적(集積) 속에서
당연히 바르게 전사(轉寫)되었을 이들 언어가
그 아주 작은 한 점에도 균등히 존재하는 명암(明暗)속에
(또는 수라의 십억년)
이미 빠르게 그 구성과 성질을 바꾸어서
나도 인쇄인(印刷人)도
그것을 변화되지 않은 것이라고 느끼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우리의 감각기관과
풍경과 인물을 느끼는 것처럼
그래서 단지 공통적으로 느낄 뿐인것처럼
기록이나 역사 또는 지구사(地球史)라 하는 것도
그런 여러 자료들과 함께
(인과의 시공적 제약(制約)이 원인이 되어)
우리들이 감각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이천년이 흐른 뒤에는
그에 상응하는 다른 지질학이 유용(流用)되고
상응하는 증거 또한 차차 과거로부터 나와
모두들 이천년 전쯤에는
푸른 하늘 가득히 무색의 공작새가 살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신진(新進) 대학자들은 대기권의 최상층
눈부시게 빛나는 빙질소(氷窒素)가 있는 곳에서
멋진 화석을 발견하거나
아니면 백악기(白堊紀) 사암(砂岩)의 층면에서
투명한 인류의 거대한 발자국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모든 명제는
심상과 시간 그 자체의 성질로서
사차원 연속체(連續體) 안에서 주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