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지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참 동안 침묵하던 준호는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민규야, 나 아무래도 정형 외가에 좀 둘러보고 와야 할 것 같다.”
다 마셔버린 빈병을 들고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던 민규는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응? 정형외과? 어디 다쳤어?! 만날 코가 삐뚤어져라 마시 더만, 술 취해서 구르기라도 한거야??!”
준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술은 니가 먹고 있잖아 인마! 혼자서 위스키 한 병이나 비우고선!”
하지만 민규는 뻔뻔한 표정으로 되받아쳤다.
“원 참, 사람 농담 한거가지고. 소심하긴. 근데 거긴 왜? 뭐 보고 올 게 있다고.”
“…그냥, 옛날 생각이 좀 나서.”
“에휴, 궁상은.”
민규는 툴툴거리며 전혀 줄지 않은 준호의 잔을 뺏어 들고는 홀짝이기 시작했다. 술이 반 정도 줄어들었을 때,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준호야.”
“왜?”
민규는 잠시 뜸을 들이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다녀오는 길에 김 선생님 댁에 들러봐라.”
“기, 김 선생님 댁에?”
되묻는 목소리가 평소의 준호답지 않았으나, 상당히 마신 상대인 민규는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어, 그래. 김 선생님. 너한테 꼭 풀고 싶은 오해가 있다고, 몇 일전에 연락이 왔거든.”
'깊은해구아래 > 그밖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어연습 - 그저, 거저 (4) | 2009.04.20 |
---|---|
김우희, 그녀의 사정 (0) | 2009.01.23 |
눈이 옵니다 (0) | 2009.01.19 |
빌리(11세)의 봄 (0) | 2009.01.18 |
산드라의 생일파티 (0) | 2009.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