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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해구아래/그밖에

심판의 날


 

 
깊은 밤, 계집아이의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낡은 집안에 울려 퍼졌다. 어미는 잠에서 깨어나 가운도 걸치는 둥 마는 둥 하고 가파른 나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아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엎드려 가녀린 팔로 머리를 감싸 안고는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미는 눈빛을 흐리곤 작은 등을 쓸어주며 속삭였다.

“쉬- 쉬- 괜찮다 예야. 다 꿈이야. 꿈. 무서워할 필요 없어.”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소녀는 그녀를 향하여 고개를 들었다. 덜덜 떨리는 턱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엄마, 엄마, 무서워, 무서웠어. 엄마, 엄마….”

여인은 어깨를 들석이며 우는 아이의 등을 말없이 토닥여주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 이내 아이는 훌쩍이며 목멘 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늘에서, 하늘에서 날개달린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내려 왔어. 천사님처럼 예쁘고 상냥한 얼굴을 하고 웃으면서 내려왔어. 그런데 그 사람들은 손에 날카롭고 불타는 창을 들고 있었어. 훌쩍, 그리고, 그리고, 흑, 어디서 나팔 소리가….”

소녀는 어미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으며 말을 이었다.

“다 죽었어. 다 죽었어, 엄마. 무서워, 무서웠어. 엄마도, 할머니도, 지니랑 자스민도. 그런데, 그런데 미스 브라운만, 그 아줌마만….”

순간 미스 브라운의 이름이 나오자 여인의 몸이 움찔 했다.

“기분 나쁘게, 무섭게 웃으면서… 천사들 틈에 서서 서있었어. 그 아줌마만, 엄마도 할머니도 다 쓸어져 있는데, 흐아앙.”

서럽게 우는 딸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그녀는 눈을 매섭게 빛냈다.

“걱정 말렴 얘야. 괜찮아. 그 아줌마가 거짓말을 한 거야. 아주 나쁜 아줌마거든.”

아이는 물기 어린 눈을 들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부드럽게 눈가를 휘게 하며 다시 말했다.

“엄마가 내일 그 아줌마 혼내줄게. 그러니까 이제 무서워하기 없기다?”

“응.”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여인은 미소를 더 짙게 하고는 작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자 엄마가 무서운 꿈꾸지 않게 자장가 불러줄게.”

그렇게 말하며 여인은 아이를 다시 침대에 눕혀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덮어 주었다. 부드러운 자장가와 토닥임이 이어지고, 잠시 후 아이는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여인은 눈물자국이 남은 뺨을 쓰다듬고는 조심스럽게 방을 나섰다.

잠시 후 잠에 빠진 듯 보이던 아이의 눈이 반짝 하고 뜨였다. 아이는 입술의 한쪽 끄트머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자, 미스 브라운, 심판의 날이다! 이제 어떻게 나올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