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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해구아래/그밖에

시점변환 - 봄 : 나도 참여해도 되겠습니까?

 

 봄. 따스한 햇살. 부드럽고 향긋한 꽃그늘 아래서 보내는 한가하고 느긋한 점심시간은 나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다른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그래, 혼자라는 게 중요한 거다. 고즈넉하게 앉아 아내가 손수 싸준 도시락을 열어본다. 오늘도 역시나 여러 가지 반찬들이 단아한 색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런 맛있는 음식은 절대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을 수 없다. 내가 음식에 집착해서 이러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아내의 요리는 정말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기에 아까울 정도로 맛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음, 맞아. 물론 나는 이해하고 만다. 분명 단 한입이라도 먹으면 당신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난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응? 뭐라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니! 대체 누가 그런 망발을! 나는 흥분한 나머지 막 그렇게 말하려다가 소리의 근원지가 교무실 안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저 흥분한 목소리는 분명 귀에 익다 못해 지겨운 것이었다. 아첨과 아부로 일색 된 말만 할 줄 아는 교감, 바로 그였다.

 

 답답하다 못해 억울한 기가 섞인 목소리가 교감의 말을 되받아 쳤다. 제법 기게 있는 목소리가 마음에 든다. 나는 들키지 않게 조심하며 슬쩍 창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털털해 보이는 남자 한명이 교감과 마주서 있었다. 아마 국어를 담당하고 있던 선생이었나. 그는 학주와 교감을 마주 보고 있었다.

 

 “이 학생의 문재를 못 알아보신단 말씀이십니까?"

 

 다시 교감이 말했다.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기분 나쁘다 못해 비열해 보인다.

 

 "그건 내가 잘 알지. 호림이 그녀석은 당연히 문제학생인 거 1학년 때 부터 알아봤지."

 

 풋! 아 하마터면 파안대소 할 뻔 했다. 교감 녀석, 언어 해독 능력이 좀 떨어지는 것 같다. 국어 선생도 같은 마음인지 목소리에 짜증이 섞이기 시작했다.

 

 "문제말고 문재 말입니다! 글 쓰는 능력! 이 학생은 보기드문 재능을 가졌어요.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고 그 학생을 키워줘야 합니다. 최우수상을 호림이에게 안 줄 수가 없어요!"

 

 음,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말을 해도 교감과 학주가 할 말은 뻔한데. 교감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는 소인배이고, 학주는 전형적인 마초스타일로,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잘 용인하지 못하는 답답한 성격의 사람이다.

 

 "우리 학교의 명예가 있소!"

 

 "그 날라리 자식을 이 권위있는 문예대회에 내보내시겠다?"

 

 후후, 내 저리 말할 줄 알았다니까. 자 이럴 때야 말로 내가 등장할 시간! 나는 냉큼 일어서 창문을 열고 안쪽을 향해 말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시는 듯한데, 나도 참여해도 되겠습니까? ”

 “이, 이사장님!”

 교감의 얼굴을 파랗게, 학주의 얼굴은 노랗게, 국어교사의 얼굴은 빨갛게 변했다.

 다양성이 있어 좋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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