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박쥐를 보고 왔다.

박쥐는 4월 30일에 개봉했다.
사실 개봉당일에 보고 싶었으나...
월말은 공포의 월말 정산이 도사리고 있어
(12시를 넘어서 5월 1일이 되서야 일이 끝나니;;)
어쩔 수 없이 첫날은 포기ㄱ-;

어제는 일이 10시에 끝나기 때문에 11시 15분 영화를 볼기로 했다.
점장님은 UP 근무였기 때문에 6시에 일이끝나셨는데
남편이랑 간이 9시 40분에 상영 하는 것을 본다고 자랑하고 퇴근하셨다.
시간이 어서 흘러라 하며 커피잔을 닦고있는데 C군이 물었다.

[예매는 하셨어요?]

사실 송탄 롯데 시네마는 아무때나 가도 언제나 자리가 넘치기 때문에
예매는 전혀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 상영 시간표를 살펴보니 잔여석이 30몇개!!??
이거 잘못하면 맨 끝자리나 맨 앞자리에앉겠다는 생각에 초조하게 남은 좌석을 확인 했다.
헌데 다행이랄까, 커플로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제일 잘 보이는 자리가 비어있는게 아닌가!
나는 다른 사람이 체어갈까 부리나케 그 자리를 예약했다.

퇴근 시간, 카페에서 카라멜마끼아또를 한잔 만들어들고
영화관으로 가서 책을 보면서 어영부영 기다리다보니 11시가 되었다.
내 자리를 찾아 앉는데 앞쪽에 앉은 커플중 남자가 말했다.

[오, 공포 영화인데 사람들이 많다?]

... 사전에 영화의 정보에 대해 알아보지 않은 사람으로 추정;;

반대로, 내 옆에 앉은 여자 두명은 지나치게 영화에 대하여 많이 알아서
영화 상영 하기 직전까지 쉴새 없이 쫑알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설마 영화 진행 도중에도 이러는게 아닐까 살짝 두려울 정도였지만
다행히 영화에 몰입하는 편인듯, 상영 시간 동안 입 한번 뻥끗 하지 않더라.
끝난 뒤 하는말,

[역시 심호하다]

...지나치게 파고 드는 형은 아닌지;;

사제 현상현.
그는 무엇 때문에 실험에 자원 했을까.

그가 바란 것은 힘이었을 것이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심폐 소생술을 하는 동안
느긋하게 들어온 의사의 조취에 모든 것이 해결 되었을 때,
지독한 무력 감을 느꼈을 것이다.
때문에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지우고
기적을 이룰수 있는 힘에 대한 욕망을 숨기기 위해
한없이죽음에 가까운 그 병원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그런 그가 힘을 얻었다.

비록 그것이 역천의 것이라해도
나의 손에 들어오면 안전하고 선한 것이라 주장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본능.
그는 곤횩스러워 하면서도 뱀파이어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경이로운 힘에 서서히 취해갈 무렵
그의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지저분한 머리에 초라한 옷차림.
세상이 지겹다는 듯한 눈으로 모든일에 의욕을 보이지 않는
서서히 망가져가는 그녀의 앞에서
그는 자신이 손에 넣은 강함을 재확인 한다.
그리고 그녀의 삶을 바꿀 수 있음을 확인하며 희열 한다.

개인적으로 김옥빈의 연기가 마음에 들었다.

[나 부끄러움 타는 사람 아니예요]

라고 순진한척 말하며
그와는 반대로 자신의 몸을 가리는 그녀는
팜므파탈이라 부르는 것이 손색이 없을 정도.

그녀는 굶주려 있었다.
아니, 박쥐의 영어 제목인 '갈증'이란 표현을 사용 하는 것이 좋으려나.
부모의 따뜻한 애정의 부제에서 부터 모든 것은 시작 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받아야 하는 그것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원하지만
주어진 것은 동정같은 조각난 관심과 백치같은 남편 뿐.
그런 그녀의 앞에 낯선, 그러나 강한 냄새를 풍기는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것은 너무나도 원하던 오아시스 통하는 유일한 길.

분명 그녀는 자신이 하는 행동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조차 깊이 생각 하지 않앗을 것이다.
본능에 이끌려 갈증을 덜어줄 유일한 생명수를 얻기 위해
그녀는 가장 쉽고 또 그렇기 때문에 인의에서 벗어난 길을 택하고야 만다.

그 대가는 끔찍한 악몽.

 

그리고 더 지독한 갈증의 시작이었다.

결국 모든 일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에 나온 바다의 모습은 참으로 의미 심장하다.
바다는 엄청난 양의 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물을 마신다면 갈증이 더해지면 더해졌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바다는 모든 생명이 태어난 곳으로
삶과 연결 되어 있다고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바다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직 둘의 관계가 순수한 호의로 엮여져 있던 시절로 말이다.
그래서 김옥빈은 마지막 순간에 현상현이 신겨주었던 낡은 구두를 신은 것이리라.

 

 

영화가 끝난 뒤
솔찍하게 말해서 여운이 남는다기 보다는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아마 기다려온 시간이 길었고 뱀파이어라는 소제에 대한 내 기대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궂이 영화에 뱀파이어라는 소제를 집어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흠, 하지만 사제가 타락하는 과정을 그리기 위해서는 뱀파이어라는 소제가 없었다면 개연 성이 조금 떨어졌을지도)

그러한 점도 마음에 걸렸지만
현상현 역을 맡은 배우가 송강호가 아니었어도 되었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예전에 트로이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딱히 아킬레스의 역에 브래드 피트가 아니어도 문제 없을 것 같았다.

송강호가 찍은 다른 영화들이나
피트가 찍은 다른 영화에서는 그런 느낌이 그다지 없었는데
묘하게 박쥐와 트로이에서는 그런 느낌이 전해져 왔다.
연기를 잘하고 못했다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배역에 어울리지 않았다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궂이 송강호가 이 역을 맡아야 했나 하는 의문이 일었는데...

조금 생각 해보니 문제의 노출씬을 소화해 낼 만한 배우가 국내에 별로 없기도 하고...
박찬욱과 송광호는 서로에 대하여 잘 알고 신뢰로 다져진 관계이니까
촬영하라때 좀더 수월하지 않았으려나.

마지막으로 사족

송강호씨!! 거기서 살 더찌우지 말아요~!!
슬림한 지금이 제일 멋지답니다^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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