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갑작스럽게 동물이 되었습니다.
어떤 동물라도 관계 없습니다.
새일 수도 있고, 네발 짐승이나 물고기, 돌고래나 해파리도 가능합니다.
유전자적 발병때문인지 저주인지, 꿈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여하튼 당신은 동물로 변했고
그 동물이 되어 보낸 하루를 글로 적어주세요.
길어도 되고 짧아도 됩니다.
나는 변신자다. 쉐이프 쉬프터라고도 불린다. 신체변형자라는 이름도 있고 그냥 별종이나 괴물이라 부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가끔, 아주 가끔 편리하거나 멋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체질로 바뀌어 버린다면 자신의 그런 생각을 저주할 것이다. 이 변신 능력은 마음대로 컨트롤 하기 매우 어렵고, 주기적으로 달에 한번은 변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언제 변신할지 알고 있다는 것 정도랄까.
나는 매달 달이 뜨지 않는 날 해가 떨어지고 나면 인간이 아닌 다른 짐승으로 변신을 해야 한다. 비록 주기적으로 사회생활에 지장이 생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길을 가다 갑자기 개나 고양이 속은 뱀이나 금붕어로 변신하지 않는 것이 어찌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당신은 모를 것이다.
오늘, 나는 한 마리의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작고 날렵한 마름모꼴 얼굴에 커다란 아몬드형의 에메랄드빛 눈동자, 늘씬하고 군더더기라곤 없는 몸은 짧고 단정한 아이보리색 털로 덮여 있다.
나는 천천히 혀로 몸단장을 하기시작했다. 비록 내 털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기는 하지만 나는 먼지 한톨이라도 묻어 있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리고 오늘은 바로 그녀를 만나는 날이다! 나는 그 어떤 고양이보다 멋지고 예쁘게 보일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녀의 멋진 향기와 길고 늘씬한 다리, 나긋나긋한 손짓을 생각 하며 그르렁 거렸다.
털고르기가 완벽하게 끝나고 나자 나는 현관문에 달린 고양이전용 출입문으로 나갔다. 문이 열리면서 살짝 사각 하는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나는 완벽하고 매끄러운 동작으로 아파트 복도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쫑긋. 귀를 새워 주위에 인기척이 있는지 살폈다. 멀리서 깔깔거리는 아이들 웃음소리와 통통통 울리는 도마 소리, 주차장에서 들려오는 차 소리들이 났지만 내가 경계하는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았다.
무겁고 살결이 출렁이기라도 하는 듯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그리고 사냥감을 노리는 듯 숨죽인, 하지만 내 귀에는 다 들리는 헐떡이는 호흡소리. 그 기분 나쁜 수위 때문에 내가 몇 번이나 죽을 뻔 했는지! 생각만 하면 전신의 털이 전부 곤두서는 느낌이다.
그는 살인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고양이 학살자에 사이코패스다. 가끔 뒷산의 나무에 낚싯줄에 목이 감겨 매달려 있는 고양이 시체들을 보면 모골이 송연해지곤 한다. 때때로 그 고양이들 중에는 안면이 있는 녀석들도 있고, 그 주인과도 안면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기분 나쁜 수위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 고양이들의 주인과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는 언젠가 결국 사람에게까지 그 흉즉한 마수를 뻗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정말로 전신의 털이 다 곤두섰다. 나는 혀로 털을 조금 정리하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내 집은 2층이어서 엘리베이터를 탈 필요가 없었다. 고양이의 신체구조상 계단을 내려가는 것은 조금 불편하지만 어려운 문제는 전혀 아니었다.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면서 수위실 쪽을 살폈다. 수위는 TV를 보며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나는 재빠르게 수위실의 창 아래쪽을 달려 주차장의 차바퀴 사이로 몸을 웅크렸다. 나는 아늑한 차체 밑에서 멈춰 주변을 살피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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