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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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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각, 사각. 상념에 젖어있던 그는 문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시계 바늘은 제법 많이 움직여 있었다. 그는 안경을 벗고 미간을 문질렀다. 도수 있는 렌즈가 아니지만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투명한 렌즈 너머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어린 시절, 안경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그것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서였지만, 좀 더 자라서는 그것들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안경을 쓰는 것은 볼 필요가 없는 것까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일단 시선에 들어오면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 주의를 끄는 강한 힘이 있다. 그는 성가신 일에 얽히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나루가 있는 방향을 항해 시선을 보냈다. 소녀는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림을 ..
에칭 etching. 중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열중한 사람이나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들어 봤을 이름이다. 사전 상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에칭 etching. 주로 동판 등의 금속판에 밑그림을 그려 산(酸)으로 부식시킴으로써 판화를 만드는 기법.동판 면에 항산성 물질인 그라운드를 입히고 그 위에 뾰족한 도구로 밑그림을 그린다. 그라운드는 대개 밀납·역청·송진의 혼합물이다. 밑그림을 새긴 동판을 질산 등 부식액에 넣으면 그라운드가 벗겨진 그림 부분이 부식되면서 동판에 홈이 패여 선 형태가 새겨진다. 판 위의 그라운드를 닦아낸 뒤 잉크를 발라 습기를 가한 종이에 압착시키면 그림이 종이에 옮겨지면서 판화가 완성된다. 커피의 라떼아트 기법에도 에칭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뾰족한 송곳을 이용하여 우유 거품에 그림..
관점의 차이 사진도 그림도 글도 영화도 모두 현실에 허구를 수없이 더하고 다시 지우며며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현실속으로 끄집어내어 타인에게 체험하게 하고 싶어 한다. 이유? 다양하다. 이해 받고 싶은 욕구. 자기 과시욕. 타인의 교화. 나르시즘. 하지만 이미 그것이 타인에게 공개된 순간 그것들은 더이상 그 작가의 머릿속에 있던 이미지가 아닌 타인의 관점에서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마치 햄릿의 오필리아가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영감을 심어줬 듯이. 그러한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이에게 보편적으로 '감동'이라는 영향을 미치는 작품들이 있다. 특히 모네의 까미유를 볼때 나는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 파란 하늘, 그 위를 부드럽게 흘러가는 구름. 풀잎이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