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깊은해구아래/그밖에

실수



당신은 갈망하던 초능력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이 달갑지는 않네요.
당신의 상황을 들어 그 이야기를 납득시켜 주세요.

-----------------------------------

어리석었다.


지금까지 나는 '무지는 죄다'라는 말을 늘 오만한 자의 헛소리라 여겨왔었다. 하지만 만약 할 수 만 있다면 어제 그 얼간이 같은 짓을 벌였던 나를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이런 비참한 기분에 휩싸여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스푼으로 팥 빙수를 거칠게 헤집었다.


"오빠, 왜 그래요? 뭐 안 좋은 일 있어? 표정이 별로야."


  나의 그녀가, 한 달 만에 만나는 그녀가 약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니, 이제 더 이상 그녀는 '나의 그녀'라 부를 수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나와 그녀석의 그녀'였다. 지난밤, 그녀를 볼 수 있다는 마음에 원숭이처럼 취해 다락방에서 발견한 그 책을 들여다보는 동안 그녀는 '그 녀석'과 함께 밤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그 죄책감과 혼란스러운 감정을 덮기 위해 평소보다 더 상냥히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초조함으로 그녀의 정신은 길게 잡아 늘여진 고무줄처럼 팽팽히 당겨져 있었다.


  '그건 실수야, 실수였어. 사고였을 뿐이야. 맙소사, 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슨 짓을 한 거야? …피임은, 피임은 했을까? 했을 거야. 그래. 그랬을 거야.'

  

  그렇게 생각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날 아침 홀로 눈을 뜬 좁은 호텔 방에 어떤 피임의 흔적도 발견 할 수 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 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임 기간이었다.

  

  만약 내가 지금 여기서 [해어지자] 라고 말한다면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목에 감고 있는 그 답답한 스카프 밑에 자리한 키스 마크는 누가 만든 거냐고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친다면 어떻게 될까?


  웅성거리며 호기심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른 테이블에 앉은 관객들 사이에 그녀는 어떤 표정을 할까?


  그래, 그녀가 그 녀석에게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란 것을, 그건 정말 사고였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사귀기 전부터 그녀는 이미 처음이 아니었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보면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이 능력이 싫은 것이다. 어제의 나는 대단찮은 녀석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았다.


  옆을 지나치는 종업원의 생각이 치고 들어온다.


  '오우, 저 커플 싸웠나? 분위기 정말 꽝이네.'


  종업원을 노려본 것은 거의 반사적이었다. 그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더니 황급히 우리 테이블을 지나쳤다.


  나 자신이 무척 한심하게 느껴졌다.


  "우리 그만 나가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녀는 조금 창백한 얼굴로 아무런 반론 없이 따라 일어섰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는 동안 나는 가까운 산부인가가 어디에 있을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