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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해구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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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연습 - 허름하다, 허술하다 : 손발이 오그라든다 날카로운 인상, 검은 양복, 뺨을 가르는 한줄기 흉터. 그를 난폭하게 보이게 만드는 요소는 많지만, 묘한 분위기를 가진 목소리만큼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없을 것이다. “어이, 노친네, 일을 그렇게 허술하게 해서 되겠어?” 하지만 노파는 그저 심드렁한 말투로 대꾸할 뿐이다. “허술하다니? 어디가 허술 하다는 게야?” 사내의 한쪽 입술 끄트머리가 올라간다. “그 ‘물건’에 대해서 말하는 거잖아? 응? 그거 어디 갔어? 내가 잘 가지고 있으라고 그랬지?” 그제야 노파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 허름한 방석 말이구먼.” 이제 사내의 이마에서 힘줄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럼 지금까지 내 이야기를 뭘 로 알아먹은 거야?! 방석 말고 내가 할 이야기가 뭐가 있다는 거야!” 노파는 호호 웃으..
가방 나에게는 몇 개의 가방이 있다. 가방에 대해서 글을 쓰라는 문장을 본 순간, 이 가방이 떠오른 것은 아마 내가 최근에 가장 자주 들고 다니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이 녀석은 풀색으로 체크무늬가 염색된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다. 손으로 쓸어보자 오돌토돌한 요절이 걸린다. 크기는 제법 커서 서류 파일도 쉽사리 들어간다. 어깨끈과 가방의 안쪽은 연한 연둣빛이 도는 겨자색이다. 어깨끈은 몸통과 마찬가지로 가죽이지만, 우둘투둘하지는 않다. 가방의 안쪽은 부드럽고 매끄러운 천으로 덧대어져 있다. 주머니가 양쪽 벽에 하나씩 있어 자잘한 물건을 넣기 편하다. 그리고 얄따란 지갑이 하나 안에 딸려 있는데, 난 여기다가 생리대를 넣어 다닌다. 양쪽의 주머니는 자주 열었다 닫았다 하기 때문이다. 다시 밖을 살펴보자. 이번엔 아..
혈육 흔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말하곤 한다. 의심을 품을 이유도 요구 하는 것도 어떤 대가나 떠날 필요, 혹은 돌아올 필요도 없이 그저 곁에 있는것 서로를 보듬어 주는것 사랑하는 것 믿고 지키는 것 내 피가 되고 내 살이 되렴 언젠가 이곳에 도달한다면.
죠니 뎁 10살이 되기 전에 술과 약을, 12살 때는 담배를, 13살에는 사랑을 처음으로 나누었다. 15세에 부모가 이혼을 했으며, 이듬해 고등학교를 그만둔다. 어느 날 니콜라스 케이지가 말했다. “이봐, 존, 연기라는 걸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어?” 첫 영화는 나이트메어. 그리고 팀 버튼과의 만남. 배우 죠니 뎁은 그렇게 세상에 나타났다.
눈물, 땀, 비, 침, 피 눈물 - 감정이 차오르고 흔들려 넘친 것. 사람들은 울지 못하는 이를 향해 감정이 메말랐다는 표현을 쓴다. 땀 - 우리 신체가 어떤 운동을 할 때에 몸에서는 열에너지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방출하기 위해 땀을 생산한다. 그래서 땀이란 노력의 상징으로 흔히 쓰이곤 한다. 허나 언제나 흘린 땀과 그 대가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비 - 파동. 비는 까마득히 높은 하늘에서 작은 물방울들이 추락하여 땅에 충돌하는 현상이다. 그 하나하나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우리를 흔들기 때문에 비가 오면 사람의 감정이 움직인다. 침 - 음식물이 만나는 최초의 소화액. 식욕은 가장 원초적인 욕구중 하나로, 이것을 원하거나 충족할 때 타액이 분비된다. 무엇인가를 탐할 때 군침을 흘린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식욕이 얼마나 강하고 본능적인 ..
선풍기 사생문을 쓰기 위해 선풍기를 찾았다. 장식장 옆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녀석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밝은 군청색. 군데군데 하얗거나 검은 긁힌 자국이 보인다. 게다가 먼지도 제법 많이 뒤집어쓰고 있어서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녀석의 목은 마치 교수형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댕강 부러져서 힘없이 떨어져 있다. 부러진 틈바구니로 전선이 보인다. 빨강, 노랑, 하양. 간신히 그 전선들에 매달려 선풍기의 둥글고 무거운 머리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만은 면한 상태다. 선풍기가 이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 까닭은, 지난가을 판이 녀석의 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겁을 상실한 그야말로 개냥스러운 고양이는 선풍기를 캣타워로 착각이라도 한 것인지 그 육중한 몸으로 가녀린 산풍기의 머리..
리모컨 사생문을 위하여 일주일에 한두 번 만질까 말까한 리모컨을 찾았다. TV옆, 쇼파 위, 쇼파 위의 방석 밑…. 여기저기 뒤척거리다가 쇼파 앞 탁자 위에서 발견했다. 어수선하게 늘어놔져 있던 책과 신문지 덕분에 눈에 짤 띄지 않고 숨어있었던 것이다. 길이 한 뼘 정도 되는 이 리모컨이 길어 보이는 것은, 상대적으로 폭이 좀 좁은 편이기 때문일 것이다. 손가락 두 마디 반 정도이다. 덕분에 그립감은 상당히 좋아 손에 꼭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네 개의 손가락으로 밑을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는 자세가 잡힌 다랄까. 리모컨에는 여러 가지 버튼이 있는데, 이는 크게 세 부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위쪽에 있는 동그랗고 작은 버튼들. 각각, 전원, TV/외부입력, 숫자, 취침예약, 소리 줄임 버튼이 있다..
커튼 흐릿한 날이지만 그래도 창문으론 빛이 스며든다. 빛은 커튼을 반쯤 통과하여 그 앞에 놓인 노란색 프래지아 화분을 화사하게 비춘다. 커튼은 상당히 얇고 부드러워 봄의 따스한 날씨에 어울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커튼이 겨울 동안에도 내도록 걸려 있었다는 것을 안다면 봄에 어울리는 것에 감탄을 하기 보다는 에너지 절약에 대한 집 주인의 무심함에 탄식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연한 상아색의 천. 그 위에 아주 흐릿한 연두색이 섞인 회색으로 무늬가 그려져 있다. 그 색상을 컴퓨터 그래픽 색상 번호로 표현 하자면 B1CF9A라고 적을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그렇게 표현하면 색을 정확히 지정 할수는 있으나 그다지 운치는 없을 것이다. 커튼 위에는 가로세로 14cm정도의 네모들이 교대로 그려져 있는 것을 눈치 채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