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해구아래/그밖에 (75) 썸네일형 리스트형 시점변환 - 봄 : 나도 참여해도 되겠습니까? 봄. 따스한 햇살. 부드럽고 향긋한 꽃그늘 아래서 보내는 한가하고 느긋한 점심시간은 나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다른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그래, 혼자라는 게 중요한 거다. 고즈넉하게 앉아 아내가 손수 싸준 도시락을 열어본다. 오늘도 역시나 여러 가지 반찬들이 단아한 색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런 맛있는 음식은 절대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을 수 없다. 내가 음식에 집착해서 이러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아내의 요리는 정말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기에 아까울 정도로 맛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음, 맞아. 물론 나는 이해하고 만다. 분명 단 한입이라도 먹으면 당신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난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응? 뭐라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니! 대체 누가 그런 .. 단어연습 - 붇다/붓다 “레이디 엘. 당신은 보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검시관이 막아섰지만 엘은 손에 쥐고 있던 부채로 그의 팔을 가볍게 밀쳤다. “저를 보호 받아야 하는 어린 소녀로 생각 하시면 곤란하답니다. 이것은 저의 권리이지 의무니까요.” 그러나 검시관은 쉽사리 길을 내어 주지 않았다. “익사한 시체를 보신 적 있습니까? 게다가 이번 경우는 열흘이나 지난 뒤에야 겨우 건져낸 것입니다. 이미 생전의 모습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소 시신이 회손 되어 있을 겁니다.” 그가 엄격해 보이는 시선을 쏟아 부었으나, 그녀는 의연하게 그를 마주보았다. 부드러운 갈색의 눈가에는 가볍게 웃음기마저 어려 있다. 차분하게 엷은 분홍빛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에 붇다 못해 조직이 허물어질 정도겠지요. 전신이 평소의 두 배 정도로 .. 초딩 [너 어제 나보고 초딩이라며?] 그 말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초딩이라니, 생각을 더듬고 뒤집고 쓰다듬고 들쑤시다 못해 구멍이 날정도로 파 해쳐 봐도 나는 녀석에게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건만, 녀석은 삐져도 단단히 삐져 있는 분위기였다. 막말로, 녀석에게 초딩 소리를 할 만한 상황이 있었다고 한들, 내가 그걸 입 밖으로 꺼낼만한 성격도 아닌데다가, 어제 녀석과 함께 있었던 시간은 내가 접속해 있던 30분 중에 고작 10~15분가량에 불과 했다. 나는 그때 택배 기사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있었기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말을 하건 전혀 듣지 못하고 단지 택배기사에 대한 무시무시한 험담을 늘어놓고 있었는데…? 서, 설마, 베어녀석, 내가 택배 기사 보고 한 말을 - 내 기억으로.. 이사 “거짓말이지?” 열려진 문 안쪽에 펼쳐져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따스한 풍경들-예를 들어 지금 막 지어진 밥을 푸고 있는 어머니라든가, 신문에 나온 퍼즐을 푼다고 정신없는 아버지, 혹은 마룻바닥에서 뒹굴며 만화책이나 게임을 하고 있을 동생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패닉상태에 빠져있던 중, 나는 바닥에 떨어진 반쯤 구겨진 종이를 발견하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그것을 집어 들고는 눈앞으로 가져갔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농 하나, 가스렌지 하나, 책상 둘, 티브이 둘, 컴퓨터 하나… 이사견적 120만원?!” 우리동네 - 화이트데이 대작전 포스터를 기초로 소설을 써보자. ----------------------------------------------------------------------------------- “그 자식, 정말 죽여 버리고 싶어.” 안경 너머의 선량해 보이기만 하던 눈빛이 순간 흉폭한 기움을 담고 빛났다. 허나 그것도 잠시,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는 질투에 활활 타오르던 그는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하기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단정하게 자른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기며 눈을 감는다. 이윽고 서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때, 그 검은 눈은 선량하고 침착한 빛을 되찾고 있었다. 그래, 난폭한 모습은 나의 스타일이 아니다. 비록 이 내면에 담긴 진실이 그러하다 해도, 나는 어디까지나 섬세한 사람으로 그녀에게 보여야만 한.. 기만하다 유랑광시곡의 일부. ----------------------------------------------------------------------- 그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무겁기 그지없는 마음에 비하여, 문은 우스울 정도로 가벼운 마찰음을 내며 간단하게 열려버렸다. 대신 손에든 촛불의 빛이 마치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양 위태롭게 흔들리며 방안의 그림자를 곡 시킨다. 그는 천천히 다가가 침대 위에 누워있는 어린 주군을 바라보았다. ‘루드비히는 정말 내 형 같다. 사실, 나는 말이야, 그때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나에게 루드비히가 함께 와주겠다고 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몰래 울다 들킨 것이 부끄럽다는 듯, 선량해 보이는 아름다운 눈동자에 어린 눈물을 다급히 훔치며 소년이 그리 고백했을 때, 그는 당혹.. 심판의 날 깊은 밤, 계집아이의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낡은 집안에 울려 퍼졌다. 어미는 잠에서 깨어나 가운도 걸치는 둥 마는 둥 하고 가파른 나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아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엎드려 가녀린 팔로 머리를 감싸 안고는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미는 눈빛을 흐리곤 작은 등을 쓸어주며 속삭였다. “쉬- 쉬- 괜찮다 예야. 다 꿈이야. 꿈. 무서워할 필요 없어.”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소녀는 그녀를 향하여 고개를 들었다. 덜덜 떨리는 턱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엄마, 엄마, 무서워, 무서웠어. 엄마, 엄마….” 여인은 어깨를 들석이며 우는 아이의 등을 말없이 토닥여주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 이내 아이는 훌쩍이며 목멘 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늘에서, 하늘에서 날개달린 하얀 옷.. 단어연습 - 메다, 매다 - 수련중 수련중 단지연(端支硏)은 지지 않겠다는 듯 벌떡 일어섰다. “그러니까, 왜, 왜 안 되는 건데!” 딴에는 거칠게 말하고 싶은 듯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으나, 목이 잔뜩 메어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그건 니가 바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제자를 항하여 가차 없이 말하는 그 입에는 조소마저 어려 있었다. 단지연은 발끈 하여 운율(雲率)을 노려보았다. 허나 운율은 그저 가소롭다는 듯 그 시선을 느긋하게 흘려 넘겨 버렸다. “왜? 바보라고 하니까 화가 난거냐? 하지만 벌써 마흔 번이나 반복했는데 넌 그 흉내도 내지 못하고 있잖아. 몇 번이나 널 메다꽂아줘야 갰냐?” 그리고는 단지연의 허리께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그 허리띠나 다시 매어라. 바지 흘러내리겠다.” 단지연은 운율에게 말대답을 할 생.. 이전 1 ··· 3 4 5 6 7 8 9 10 다음